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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고독과 애수를 분다 70만 대군의 ‘낭만블루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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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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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색소폰 동호인들이 일산 호수공원에서 합주를 하고 있다.

인생은 7음계와 같다는 말이 맞는다면, 7음계 속에서 우리네는 인생을 다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양음악에서는 반음도 음계인 만큼 12음계라고도 하지만, 우리의 전통 음계인 궁·상·각·치·우 5음계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희로애락이 우주를 벗어나 영(靈)의 세계로 가지 않는 한 절묘한 7음계의 앙상블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색르포│그들은 왜 색소폰을 부나 #입심으로 부는 게 아니라 아직 꺼지지 않은 열정을 부는 것 #낙원동 악기상가엔 인생2막 리듬 찾는 남녀 북적

그래서 찰나를 깨뜨리며 탄생한 새로운 생명체의 고고한 울음을 시인들은 음악이라고 했으리라. 지난 4월4일 오후 2시.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몸살을 앓듯 휘몰아치는 경제의 겨울 속에서 가장 혹독하게 시련을 겪고 있을 5060세대, 더 나아가 6070세대들은 노후와 취미생활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궁금해 서울 종로구 낙원동 악기전문상가를 찾았다.

가끔 거리의 광고 현수막에서 지친 마음과 육신을 색소폰 연주로 달래자며 회원을 모집하는 것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막상 낙원악기상가로 들어서는 순간 악기는 지친 사람들이 아니라 왕성한 사람들이 노후의 인생을 즐기려고 찾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적잖이 놀랐다.

“색소폰 동호인이 최소한 60만~7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색소폰 열풍이 불고 있는데, 지쳤다면 악기를 불어댈 힘이 있겠습니까? 젊고 늙고를 떠나 여유 있는 여성들까지 포함해 대부분 노후에 대비해 미리 배워두자는 마음으로 찾아옵니다.”

낙원동 악기전문상가

상가 2층에 자리 잡은 새음악기 박대식 사장의 말이다. 박 사장은 그러면서 다른 상점을 둘러보면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시 인생은 월급봉투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낙원동 악기전문상가를 모를 리 없겠지만 전문연주가·신인연주가, 취미생활로 악기를 선택한 젊은 주부들, 그리고 학생과 아마추어 연주가로 악기상가는 예상 이상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1970년 건립 이후 내년으로 40년이 되는 낙원동 악기전문상가는 이미 수많은 뮤지션이 거쳐 갔고, 이제는 그들의 자녀들이 다시 찾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악기전문상가로 기네스북에 등록돼 있을 정도라고 하니 별도의 설명이 오히려 이곳의 위상을 삭감시킬 것 같아 조심스럽다.

건물 자체는 화려하지도 누추하지도 않아 특별한 기대를 갖지 않았으나, 악기점이 빼곡히 들어찬 2층과 3층으로 올라서자 외형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던 완전한 별세계가 나타났다.

공간이 협소할 정도로 관악기와 현악기가 꽉 채워져 있고, 피아노와 전자피아노 커즈와일 신디사이저, 두드려 팰수록 신나게 리듬을 토해내는 타악기 등 악기라는 악기는 모두 있을 것 같은 이곳에서는 찾아온 손님이 자기들끼리 명기와 범기에 대해 만져보고 불어보고 두드려보면서 평가를 내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부터 특이해 보였다.

한 모퉁이에서는 연령층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마치 총동문회에라도 참석하는 듯 남녀노소를 의식하지 않고 꾸역꾸역 모이더니 마침 악기를 시연하던 젊은 마니아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금방 그에 동화돼 장단까지 맞춰가며 함께 어울리는 것도 특별한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악기점 주인은 웃기만 할 뿐 말리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모든 종류의 악기가 출생지를 알리는 족보를 가지고 있지만 어딘가 모자라게 태어났거나 상처 입은 악기도 이곳에서는 귀한 손님이었다. 라이브 콘서트라도 하듯 리듬을 타고 둥당거리며 악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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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새음악기’에서 색소폰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다.

왜 이곳을 낙원동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이곳이 낙원이었다. 2층으로 들어서자마자 색소폰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입구의 한 악기점 앞 통로에서는 연주가들이라면 모두 알아듣는 통칭 ‘장사익 버전’으로 꽁지머리를 한 백발의 ‘60대 청년’이 악기점 주인이 꺼내준 프랑스제 ‘셀머(Selmer) 슈퍼액션2’ 알토색소폰을 들고 <대전블루스>를 연주하자 주위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가 터진다. 이곳을 찾는 50~60대 애호가들은 이미 자신만 사용하는 마우스피스나 리드(Reed) 하나씩은 가지고 다닐 정도여서 악기점 주인도 악기가 다칠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팔짱을 끼고는 “저렇게 불 수 있으려면 4~5년은 빨아댔겠어요. 웬만하면 저 정도는 안 돼도 근처는 가요”라면서 옆에서 지켜보던 중년부인에게 악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명기를 사러 온 손님에게 ‘셀머 리퍼런스54’의 가격(약 750만 원)이 결코 비싸지 않음을 이해시키려는 모양이었다.

“명기(名器)는 명화(名畵)와 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두면 확실하게 자산가치가 있습니다. 수제품이지만 순은으로 된 색소폰은 아예 시장에 나오지 않거든요? 3년 전에 딱 하나 손님이 들고 나왔는데 200만 원 달라고 하더니, 지금은 2,000만 원 준다고 해도 팔지 않겠답니다. 꼭 비싸야 명기가 아니고, 귀한 제품은 따로 있거든요. 요즘은 전문가들도 명기 보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알토색소폰 가장 많이 연주

색소폰은 벨기에 출생의 아돌프 삭스(A. Sax)가 1840년대 만들어낸 작품으로 클라리넷에서 파생돼 금속악기라고 할 수 있지만, 소리 내는 부분(리드·리가처·마우스피스)의 구조 때문에 목관악기로 분류된다. 그 중에 인간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것이 색소폰이라고 했다. 하지만 색소폰 열풍을 악기 구조로만은 설명할 수 없었다.

“전체 악기를 통틀어 연주 동호인이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가 없습니다만, 색소폰 동호인이 700만~800만 명 된다는 낚시 동호인만큼은 되지 않아도 60만~70만 명은 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 중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호인이 30~50대라고 보면 됩니다. 새 악기를 구매하는 층은 40대와 50대가 가장 많고, 물론 60대와 70대도 제법 많이 찾아옵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갑자기 여성의 비율이 늘었는데, 5~6%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악기상가를 찾아와 색소폰을 구매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남자 손님이 딸이나 아내에게 사다 주는 것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지요.”

새음악기 박대식 사장의 말이다. 지친 사람들이 그나마 여유를 찾으려고 악기점을 기웃거릴 것이라던 짐작은 참으로 가소로운 생각이었다. 새음악기 박 사장은 왜 그렇게 색소폰 동호인이 늘어난 것으로 보느냐고 묻자 나름대로 재미있는 분석을 펼쳤다.

“색소폰은 다른 악기에 비해 구조와 운지법이 간단해 초보자들이 쉽게 배울 수 있어요. 물론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지만요. 더구나 재즈·블루스·트로트처럼 고독하고 애수를 담은 멜로디를 토해내는 데는 색소폰을 따라올 악기가 없지요. 가장 많이 연주하는 것이 알토색소폰이지만 테너나 소프라노 색소폰도 마찬가지입니니다.”

박 사장은 계속했다.

“색소폰 동호인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IMF 직후라고 상가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하루아침에 밖으로 내몰릴 때 아직 체력은 왕성한데 무엇으로 소일을 하겠어요? 술도 하루 이틀이고, 그것도 술잔을 맞춰줄 상대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옛날처럼 골방에 처박혀 노름이나 하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처자식 보기에도 좋지 않고. 그럴 때 자신에게 눈을 돌리면서 색소폰을 찾기 시작한 것 같아요.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고요. 저가는 30만 원대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악기를 들고 학원이나 연습실을 들락거리면 남들 보기에도 여유가 있는 것 같고, 특히 낭만을 아는 사람으로 여겨지니 가족도 아빠를 근사하게 평가할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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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동호인들의 연주실.

여기에 색소폰이 정신과 육체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 입소문으로 알려진 것도 색소폰 열풍에 한몫 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악보를 보고 감정을 넣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음악에 몰두하다 보면 치매까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증명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60대 애호가도 상당히 늘었다는 것이다. 박 사장이 말하는 여성 마니아 증가 이유도 재미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출연자가 색소폰을 부는 모습이 멋있게 나오니까 그걸 보고 빠져든 사람도 많아요. 배우가 직접 연주하는 것은 아닐망정 색소폰을 걸치고 은은한 조명 아래서 애인을 생각하면서 넘어갈 듯 불어대면 그 장면에 나오는 사람이 꼭 자기 같고 가사까지 기가 막히게 자기의 과거 같거든요? 그것도 꼭 주인공만 불어요. 그러니 빨려 들지 않겠어요? 그래서 색소폰 나오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반드시 매상도 따라 오릅니다. 하하하….”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색소폰 명연주자인 이봉조 씨가 국제가요제에서 <무인도>를 열연하자 그 모습에 반한 여성들이 색소폰 학원으로 달려왔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 같았다.

악기 수입이 자유화되기 이전에는 돈이 있어도 색소폰을 구하기 어려워 이봉조·길옥윤 같은 명연주자들이 애를 태울 때 그림과 악기 연주에 남다른 재주와 애정을 가졌던 김종필 전 총리가 악기를 수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지만 그만큼 색소폰은 어느새 대중적인 악기가 되고 있기도 했다.

색소폰 연주가 육체와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일산에 사는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사무실에서 매일 화투놀이로 소일하다 색소폰을 배운 후 화투판을 엎었고, 아들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또 다른 중년은 색소폰을 연주하느라 배운 긴 호흡법으로 뒤늦게 아들을 낳았다면서 잔치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일제 이어 중국·체코제 수요 늘어

샬롬악기의 조정형 대표에게 전국의 악기점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낙원상가의 악기점이 250개이고, 전국에 500여 곳 정도입니다. 여기에 연간 1만8,000여 대의 색소폰이 수입됩니다. 함께 모여 연주하는 동호회는 지역과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어림잡아 700여 곳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조 사장은 “‘색소폰 나라’라는 사이트는 회원이 총 7만여 명이고 매일 7,000명 정도가 방문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그런 정도라면 동호회가 700곳은 훨씬 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처럼 색소폰 동호인이 늘어나는 요인 중 하나가 시간과 금전적 여유라면 색소폰 가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40~50대의 ‘허리띠세대’가 고객의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 맞겠지만 새음악기 박 사장은 가격이야말로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신생 악기 메이커가 늘어난 이유도 있고 환율이 널뛰기를 하면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3~4년 전부터 가격이 상당히 내려갔습니다. 고객 중에는 200만~250만 원대는 돼야 제대로 소리를 낸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100만~150만 원 제품을 가장 많이 찾습니다. 물론 40만 원대 제품도 연주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좋은 악기는 아마추어들이 다 가지고 있고 프로급일수록 오히려 저가 악기를 애용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하자 박 사장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한국 사람들은 브랜드를 좋아해서 특히 150만 원대의 ‘야마하’ 제품을 가장 선호해요. 야마하 중에도 당연히 고가품이 있지요. 야마하를 선호하는 건 디자인과 키 포지션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대만에서 생산하는 미국 브랜드인 ‘콘셀머’도 140만 원 정도로 많이 찾지요. 마에스트로·에스티·가브리엘 같은 제품은 60만~80만 원 선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중국 제품과 체코 제품이 저렴하고 음질에서도 손색이 없어 수요가 늘고 있어요. 국산 제품으로도 코스모스·삼익악기 등에 이어 한때 피아노만 생산하던 영창악기에서도 색소폰을 포함한 관악기를 생산하면서 더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됐어요. 특히 영창악기는 색소폰 인구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됐다는 판단인지 다양하고 고급 브랜드를 가진 메이커들과 합자도 하고 아예 인수도 해서 앞으로는 영창악기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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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의 귀띔이 아니더라도 영창악기가 독일의 명품 ‘앨버트 웨버’ 색소폰을 고유 브랜드로 내세워 치고 나가자 기존의 색소폰 브랜드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영창악기의 박병재 부회장은 “최고품으로 승부를 걸겠다. 악기는 물론, 케이스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다. 전문 연주가들뿐 아니라 취미로 처음 시작하는 분들도 영창악기 전시장을 많이 찾는데, 그런 분들이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검토와 연구에 들어간다.

머지않아 ‘한 가정에 한 악기’ 시대가 반드시 온다. 세대교체가 빨라지고 2만 달러시대를 맞은 국가의 국민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변화가 가정마다 악기 한 가지씩 소유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주말 오후의 나른한 시간에 저마다 토해내는 연주가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마침 골프 모자를 쓴 50대 중년이 색소폰 케이스를 들고 젊은 마니아의 연주 모습을 지켜보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빙긋 웃고는 한 악기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얼른 뒤쫓아 프랑스제 ‘셀머’를 꺼내놓고 주인과 뭔가를 이야기하는 틈을 비집고 들었다. 김종복(54) 씨. 6년째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고 했다. 뜻밖에 그는 대한항공 기장이었다. 경계선도 장벽도 없이 끝없이 넓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전 세계를 가슴에 담아왔을 기장에게 색소폰은 어떤 존재인지 무척 궁금했다.

“좋으니 하지요. 잘 불고 못 불고를 떠나 가슴에서부터 가장 가까이 내 몸에 붙어 호흡하는 악기가 색소폰 아닙니까? 사랑하는 아내도 색소폰을 연주할 때만큼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겠습니까? 끝없이 끌어안고 있어도 항상 똑같고, 짜증 한번 내는 적 없고, 불면 부는 대로 전율이 느껴지는 음악을 들려주니 이보다 더 좋은 반려자가 어디 있습니까? 나이 먹어서 최고의 반려자는 색소폰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디다? 하하하….”

김 기장은 마침 비행 스케줄이 없어 나왔는데 색소폰 마니아들을 보니 “너무 좋다”며 자신이 참여하는 동호회를 소개해줬다. 김 기장은 담배를 꺼내 피워 물고는 가족에 대한 얘기를 했다.

“사실 우리 가족은 모두 악기 한 가지씩은 다룹니다. 전공과 상관없이 취미로 하는데 아들 병준(20)이는 전자기타, 딸 국화(24)는 피아노와 첼로, 아내는 천상의 소리를 낸다는 오카리나를 해요. 집사람이 아이들 시집 장가보내고 나면 늙은 모습만 서로 쳐다보고 앉아있을 것이냐며, 봉사활동도 하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가족 합주도 하자면서 내게도 뭔가 배우라고 합디다. 아내 말 듣지 않아 행복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아 이게 내 생활철학과 비슷하다, 음악이라는 게 권력과 비슷하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음악이 권력과 비슷하다니? 뜨악해서 쳐다보자 그는 개구쟁이처럼 웃더니 말을 이었다.

“권력이라는 말은 누구나 쓰지만 정확한 정의가 없잖습니까? 끝없이 논란만 있지 지금까지 권력이 무엇이라고 정의해 놓은 것은 없어요. 음악도 누구나 말하지만 정확한 정의는 없거든요?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그 속에서 살아간단 말이지요. 저항하면서, 타협하면서, 때로는 투쟁하면서, 그렇게 살잖아요. 색소폰이 바로 그렇더란 말입니다. 초보 때는 소리만 나와 주면 감사했는데, 조금씩 감정이 들어가고 손놀림이 유연해지면서 욕심이 생기고, 어쩌다 기막히게 좋은 연주를 들으면 나는 왜 안 되는지 고민하며 싸우게 되고, 투쟁하게 되고, 그러다 작은 발전에 만족하는 것으로 타협도 하고요. 색소폰을 연주할 때면 항상 내 인생 같다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더 어루만지는지도 몰라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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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연주는 가슴으로

역시 하나일 수 없었다. 색소폰의 음색이 연주가에 따라 달라지듯 김 기장에게 색소폰은 인생의 교사이기도 했다. 무질서 속의 아름다운 질서를 느낄 수 있는 낙원의 음률을 뒤로하고 김 기장과 함께 그가 참여한다는 일산의 ‘히어로’ 동호회 사무실로 이동했다.

도중에 그는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면서 일산 동구 중산동에 있는 블루문색소폰클럽부터 찾았다. 이 클럽의 문한조(60) 원장은 한 언론사와 백화점이 운영하는 문화원 강사로 중·고등학교 음악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은 일정한 규칙이 있는데 초보연주자에게는 규칙이 없다. 누가 연주하든 음악을 사랑하면 그때부터 하나씩 규칙을 깨달아간다. 우리 블루문색소폰클럽 회원은 21명인데, 늘 말하는 것이 멜로디만으로 연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색소폰은 내 감정을 내 목소리처럼 표현할 수 있어 사랑받는 것인데, 멜로디만 흘러나오게 한다면 막대기로 판자를 두드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연주는 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 한다는 말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내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든 우리 회원이든 반드시 음정·음질·음색·음량·음폭, 5가지를 생각하면서 연주하라고 주문한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 기장이 “문 앞까지 왔던 초보자들이 들었으면 어려워 전부 도망가겠다”면서 특유의 허스키한 웃음을 터뜨리자 문 원장은 정색하며 “그게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연주자의 자세예요”라고 강조했다. 김 기장은 문 원장이 취입한 색소폰 연주곡 CD를 받아 들고 자신의 동호회 연주실로 방향을 돌렸다.

좋아하는 연주곡을 선곡해 문 원장에게 부탁했다는 것으로 보아 김 기장은 비행하면서도 끊임없이 연주 기법을 공부하는 모양이었다. 저 나이에, 저 직업에, 대충 불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제가 대한항공 창사기념회 때 대한항공 로고송을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처음 불어봤거든요? 회장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죠. 그때 제가 느낀 것이, 나만의 감정을 조금만 더 이입하고 조금만 더 세련되게 연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굉장히 컸어요. 그걸 채우려고 지금도 애 쓰는데 잘 안 되네요. 허허.”

김 기장이 연습실로 애용하는 일산 서구 대화동의 히어로색소폰동호회 연주실로 들어서자 165m2 조금 넘을 것 같은 실내는 마치 갈대숲을 힘차게 헤치면서 몸을 비트는 큰 가물치의 움직임처럼 반주기에서 터져 나오는 음률과 함께 거친 색소폰 리듬이 완전히 부스를 흔들어놓고 있었다.

25명의 회원 중 9명이 모여 5월16일 호수공원 ‘노래하는 분수대’에서 펼치게 될 2009년 대규모 합동연주회를 앞두고 연습 중이라고 했다. 김영웅(56) 실장은 갑자기 합주를 멈추게 하고는 무엇이 불만인지 소리를 내질렀다. 김 실장이 젊어 보여서인지 모두 연배인 것 같았는데 연주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도 꼼짝 못하는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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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색소폰을 연주하는 이봉조.

가정까지 화목해져

“여러분이 무대에 서는 순간 관객은 음악의 소비자이고 여러분은 생산자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따위 음악을 생산해서 소비자들이 박수를 치면서 사가겠어요? 연주하는 생산자의 기본이 감동을 주는 음악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영어에도 유창한 발음이 있듯 색소폰 소리에도 아름다운 발음이 있어요. 호흡도 잘 조절해야 리듬과 박자의 균형이 유지되고, 턴깅(Tonguing)이 제대로 안 되면 노랫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관객은 색소폰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구렁이가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담 넘어가듯 불어서야 되겠습니까? 끊어줄 때 끊어주어야지요. 다시 합시다.”

연주가 곧 교육이었다. 돈 받고 연주회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핀잔까지 들어가면서 왜 하나 싶지만 회원들은 전혀 싫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연주는 다시 <용두산엘레지>에서 <칠갑산>을 거쳐 <라스트 데이트>로 이어졌다. 합주를 마치고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여기야말로 ‘은퇴 후 취미생활’의 요충지가 아닐까 싶었다.

대부분 50대 초·중반이었지만 70대도 2명이나 됐다. 73세의 박성근 전 교장과 72세의 이윤희 전 은행지점장이었다. 이들로 인해 동호회의 무게가 느껴졌다. 여성회원은 없느냐고 묻자 히어로동호회에서 가장 오래된 김 기장이 말을 받는다.

“주말에는 남편과 아이들 챙기느라고 나오지 않았고, 키가 길쭉한 처녀는 아직 애인이 색소폰보다 좋다고 토요일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인쇄용지를 만든다는 정낙중(51) 사장이 끼어든다.

“몰라서 그러지. 색소폰에 빠지는 맛이 남자한테 빠지는 맛에는 비교가 안 될 걸?”

웃음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 틈을 타서 회원들에게 동호회를 찾게 된 이유를 물었다. 먼저 정 사장이 입을 열었다.

“2년 전 호수공원을 산책하다 연주회를 보고 충동을 느꼈어요. 사업에 몰두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는 것 같아 용기를 냈지요. 이제는 사업체 옆에 개인 연주실을 꾸미는 게 꿈일 정도로 색소폰에 매료돼 있지요. 색소폰을 불기 전에는 집사람이 저를 1만 원짜리 지폐 속에 인쇄된 세종대왕 얼굴 보듯 했어요. 돈 벌어다 주는 사람으로만 본 거지요. 그러다 지금은 아이들 생일이나 일요일이 되면 여기(연습실) 오자고 먼저 옆구리를 찔러요. 제가 연주하는 걸 듣고 싶다는 거지요. 색소폰을 불면 남편 바람은 끝난다는 말이 진짜입니다. 가정이 화목해지는데요?”

김 실장이 “회원들이 가족들 모시고 연습실을 찾는 게 제일 보기 좋고, 그래서 어떤 행사가 있어도 가족이 온다고 하면 메인 연습실(방음장치가 된 33m2 규모의 대형 합주실)을 비워드린다”고 거들었다. 정 사장의 소개로 동호회를 찾게 됐다는 이성희(55) 철도공사 기관사는 쉼터 문화운동과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부인이 등을 떼밀었다면서, 색소폰을 들면 하루 평균 6~10시간씩 기관차를 몰고 녹초가 됐던 몸이 어느 새 풀린다고 했다.

“내 자신이 그렇게 진지해질 수 없고, 미숙하면 미숙한 대로 모든 열정이 색소폰 속에 녹아드는 것 같아요. 1주일에 세 번 정도 비번 날 오지만 심지어 성당에 가는 날도 여기 들어오면 나가기 싫을 정도가 되더라고요. 저는 퇴임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내를 따라 색소폰을 들고 봉사활동을 할 겁니다.”

건강에도 도움돼

박성근 전 교장은 정년을 마치고도 도전정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색소폰을 배우면서 확인했다며 연신 흡족한 표정이었다. 칠순이 넘어 색소폰 연주에서 도전정신을 찾았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말로 들렸다.

“이 나이에 어떻게 악기를 다룰 수 있겠나 싶어 망설였지만 42세의 딸이 아빠는 할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냈고, 소리가 나오는 순간 환희를 느꼈어요. 하면 돼요. 누구나 초보 아닙니까? 무조건 동호회에 나오면 다른 회원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줘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 젊은 사람들과 대화 되지, 대화 중에 세상 돌아가는 내용도 듣지, 회원들의 옷차림을 통해 패션의 변화도 알게 돼요. 무엇보다 내 자신이 달라지죠. 악보를 보다 보니 인조눈물을 넣지 않아도 될 정도로 눈동자 운동이 활발해지고, 두뇌가 멈추지 않고, 더 이상 두뇌세포도 늙지를 않는 것 같습디다. 손가락 운동을 끊임없이 하니 전문가는 아니지만 치매 예방에도 좋겠지요. 연주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지고 몰입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악기 구입비 정도만 있으면 되니 이보다 더 유익한 여가 선용이 또 있겠어요?”

“말씀이 모두 맞다”는 회원이 있었다. 편안한 웃음을 보이며 말없이 듣고 있던 회원은 이제 연주를 시작한 지 8개월째 접어들었다는 임기빈(52)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과장이었다.

분명히 의학적으로도 색소폰 연주는 치료제 이상의 효과를 준다면서 “우리 선조들이 악기가 없을 때 굿거리장단 같은 3박자 리듬에 맞춰 흥을 내기도 했지만 단조에 해당하는 판소리·시조·민요 같은 감상적이고 애절하고 한이 담긴 노래를 주로 부른 것은 시대적 이유도 있겠지만 그게 온몸으로 불러야 되고 그렇게 속에 있는 모든 걸 토해내듯 함으로써 건강이 유지되기 때문이거든요. 색소폰은 복부의 근육을 움직여 횡경막을 조종하는 복식호흡을 하면서 긴 호흡으로 부는 악기이니 음색은 두 번째고 건강에 직결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요”라며 색소폰 애찬론을 펼쳤다.

“제가 기관지 천식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폐활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했는데 불현듯 색소폰이 떠오르는 겁니다. 이거다 싶었지요. 의사가 양약 치료를 생각하지 않고 악기로 치료해보겠다고 생각했다니 우습지요? 그러나 역시 주효했습니다. 8개월째 됐는데 천식이 주소도 없이 사라졌어요. 하하하….”

김영웅 실장이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색소폰 연주가 천식 치료의 특효약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에게 회원들이 선호하는 곡은 어떤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색소폰 연주를 20년 가까이 하면서 강의도 나가고 특별연주회에도 초대 받는 만큼 노래의 변천도 사회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회원들의 애연곡은 나이와 성격에 따라 정말 다양합니다. 물론 트로트에서 최신 유행곡까지 마치 의상 패션처럼 시대적 조류를 타고 연주곡도 변화가 보이죠. 1980년대 후반에 연일 데모가 계속될 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불어댔으니까요. 그렇지만 역시 색소폰동호회에 나오는 분들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이슈에 예민한 연령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고 추억이 담긴 곡을 많이 연주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벌써 저녁이 묻어오고 있었다. 김 기장은 “색소폰의 마술사라는 케니 G, 케니 가렛, 노장 소니 콜린스 같은 세계적 색소포니스트들이 한국을 찾아 공연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색소폰 마니아 층이 두텁다는 것”이라면서 누가 무엇을 불든 내 자신이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시 합주실로 들어갔다.

글■이호 월간중앙 객원기자·작가 [leeho5233@hanmail.net]
사진■오상민 월간중앙 사진기자 [o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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