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경영자 법률적 책임 범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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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현행법상 기업을 부실화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주를 처벌할 수는 없다.

비자금조성.뇌물공여등 명백한 범법행위가 있을 때에만 형사처벌을 할수 있다.

그러나 회사가 입은 손해는 민사소송을 통해 기업주로부터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다.

문제는 형사처벌에 대한 요구는 높은 반면 민사책임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평소 기업주에 대한 감시가 느슨한 사회분위기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는 신화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 형사책임 = 부실기업주에 대한 형사처벌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사건은 율산.덕산.한보그룹 사건이 대표적이다. 부도이후 비자금조성 (배임).탈세.횡령.뇌물공여.사기 등의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부실 자체가 아닌 경영과정에서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한다는 사법원칙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이지만, 이들 사건은 부실규모가 엄청난데도 '부수적' 혐의로 선별적 처벌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이 있다' 는 의혹을 받아왔다.

기업주의 경영행태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다. 상법상 '특별배임죄' 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 법조항은 기업주가 회사 이익이 아니라 개인적 이익을 도모했을 경우 10년이하의 징역, 3천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평소 기업주의 경영을 감시하기 위한 법조항이다.

그러나 이 법조항이 적용된 뚜렷한 판례는 찾기 힘들다. 사문화돼 있다는 얘기다.

이에대해 대법원의 임시규 (林時圭) 판사는 "특별배임은 부실을 예방하자는 측면이 강하지만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소액주주들의 견제기능이 활발치 못한 상황에서는 별로 기능발휘를 못한다" 고 말한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특성상 소액주주가 기업주를 제대로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부실기업주에 대해서는 예금계좌추적 등 법령을 강화해 경영과정에서의 범법행위 여부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민사책임 = 상법상 이사들이 회사에 손해를 입혔을 경우 회사는 이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불법행위는 물론 임무를 게을리 했을 경우도 포함된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례는 영업을 과장해 분식결산하는 방식으로 작성된 기업의 결산보고서를 부실 감사한 회계법인과 회계사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신뢰도가 낮은 결산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업주뿐 아니라 회계법인도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손해배상은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기업주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상법상 감사가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의 감사와 기업주와의 관계에서 현실적으로 감사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따라서 주식 5%에 해당하는 소액주주들이 대표소송을 낼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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