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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금융개혁 납세부담 줄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정부가 추가로 50조원의 채권을 발행하여 금융구조조정을 해나가겠다고 발표하였다. 과거에 정부는 금융기관의 부실이 커질 때마다 통화증발을 통해 이의 해결을 시도해 왔는데 그 결과는 인플레에 의한 국민의 실질소득감소로 실제로는 똑같은 국민부담으로 귀착되었으되 근로소득자와 자산소득자 간의 분배의 불공평성 야기 등 부작용이 많았다.

재정부담을 통한 부실정리는 부실정리비용을 국민에게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부실정리 과정의 효율성, 투명성을 감시.감독할수 있게 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손쉬운 통화증발에 의한 부실정리보다 실질적으로 국민들 입장에서 볼때 더 바람직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부실정리와 금융개혁을 추진해 나가는데 있어서 재원조달계획은 그 시작에 불과하나 어쨌든 이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의지와 방향이 섰으니 첫걸음은 잘 옮겨졌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과제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느냐에 따라 납세자부담에 의한 금융부실정리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금융구조조정이 되기위해 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 유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주어진 부실규모 하에서 납세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부실정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실채권을 인수, 관리하는 성업공사에 전문경영체제를 도입하여 부실채권의 실질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이의 전문적인 관리와 매각을 통하여 인수비용이 나중에 충분히 회수될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금보호기금을 통한 은행의 증자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단순히 부실화된 은행의 자본을 증액시켜 주어서는 안되고 증액된 자본이 다시 잠식되지 않도록 은행의 자구노력.경영개선조치.경영진의 교체를 통한 전문경영체제 도입과 동시에 자본증액을 지원해야 한다. 은행의 경영이 개선되어야 나중에 민영화를 통해 납세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둘째, 이와 더불어 생각해 보아야할 것은 금융기관 부실정리와 기업구조조정의 순서이다. 흔히 금융기관을 먼저 정상화해 놓고 기업구조조정을 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금융부실을 겪은 대부분의 나라들은 부동산 거품 붕괴와 더불어 부실채권이 늘어나 부실규모가 이미 가시화된 상황에서 부실채권정리, 금융기관증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금융부실의 주요인은 기업부실이며 앞으로 부도가 나게 될 기업들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활에서 부실채권규모의 추정은 어려우며 따라서 섣부른 은행증자는 추후에 정부가 반복적인 증자를 해야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제일.서울은행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전문용역회사 등을 동원하여 은행 혹은 채권단에서 시장전망과 재무구조에 대한 정확한 심사를 거친후 회생불가능한 기업들을 어느 정도 판별한 후에야 은행의 부실규모가 보다 명확해질 것이며 그와 동시에 부실채권을 인수하고 은행자본증액을 시켜주는 것이 훨씬 신뢰성 있는 부실처리 방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50조원의 재원 보다 추가적인 재정출연도 각오하고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부는 이번 부실정리과정을 통하여 과연 우리가 어떤 금융산업을 이룩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비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실채권인수와 금융기관 자본증액은 결국 금융 정상화에 목적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소유 지배구조는 어떻게할 것이며, 은행산업의 집중도는 어디까지 인정하고, 외국자본의 금융지배는 어디까지 수용하며 궁국적으로 금융시장구조는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비젼을 가지고 있어야 추후 민영화, 합병, 외국투자자에 의한 인수, 기업재무구조개선 등에 대해 원칙을 세우고 대처할 수 있다. 원칙이 제대로 서지 않은 금융부실정리는 이해당사자들과 정치적 압력에 의해 실종되기 쉽다.

조윤제<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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