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사회주의 후유증 '러시아 이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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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모스크바에서 최근 사귄 친구 세르게이는 딸 카차 (7) 의 이빨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충치가 심해 이빨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딸이 아무리 타일러도 단것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간 이빨이 망가지고 커서 얼굴이 미워질 수 있다고 야단쳐도 카차는 도대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르게이처럼 러시아 부모중엔 아이들의 치아관리 때문에 골치를 썩이는 사람들이 많다.

생필품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던 사회주의 시절에 성장한 그들은 칫솔과 치약을 잘 구하지 못해 치아상태가 아주 나쁘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녀들의 치아관리엔 신경과민일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다.

실제로 러시아 성인들의 구강상태는 엉망이다.

누구나 충치 한 두개씩은 갖고 있고 이빨 색깔이 거뭇거뭇하게 변색된 사람들도 많다.

이 때문에 러시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러시아 여인들에게 두번 놀란다고 한다.

처음엔 '세계 최고' 라는 러시아 여인들의 미모 (美貌)에 놀라고 두번째엔 이들이 웃을 때 드러나는 '참혹한' 이빨상태에 놀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 신랑감과 신부감의 웃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건치 (健齒) 를 소유한 미인이야말로 진짜미인이라는 말도 있다.

러시아인들의 이빨상태가 나쁜 이유는 단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 모두 계절에 관계없이 아이스크림을 즐겨 찾고 차나 커피를 마실 때도 보통 설탕을 두 세 숫가락씩 넣어 먹는다.

오죽하면 러시아가 쿠바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쿠바에서 수입되는 설탕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다행히 시장경제체제가 뿌리내린 최근엔 러시아인들도 치약.칫솔을 구하기 어렵지 않아 치아건강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또 요즘 러시아 텔레비전에선 치약광고가 유독 많이 눈에 띈다.

한국의 초코파이 제조회사가 단것을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습성에 착안해 시장을 장악했다면 서방의 치약회사들은 이빨의 건강상태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으로 돈을 벌고 있다.

모스크바=김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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