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노자 '도덕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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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전이라 해서 절대적으로 정해진 모범답안식 해석은 없다.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해석이 새로운 사상을 낳기도 한다. 그렇다고 고전의 해석에 기본 골격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해석하는 당사자는 자신이 처해있는 사회.문화적 상황이란 제한범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전해석이 어떻게 상황의 구속을 벗어나 보편성을 지니면서 창조적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해석학' 이란 철학적 방법이 등장한 것도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도 현재의 상황과 연관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고전중의 하나. 최근 환경파괴 등으로 표현되는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읽혀지고 있기도 하다.

공자.맹자가 주로 인간을 중심에 놓고 사회진보를 꿈꾼 제도권 사상가라면 노자는 철저히 이같은 이념이 가져올 수 있는 모순을 해체하고자한 비제도권 사상가였다.

그가 다뤘던 주제는 '자연' 인데 이때의 자연은 인간이 지배의 대상으로 파악한 근대 자연과학의 자연이 아니라 포괄적이고도 궁극적이며 자기 활동적인 형이상학적 자연이다.

또한 자연은 영원하고 무한한 생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 (自)' 와 '타 (他)' 의 대립이 있을 수 없다. '타' 에 의해 대립되는 '자' 란 제한되고 한정되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다. 또 다른 어떤 것으로 부터가 아니라 스스로의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다는 뜻을 포함한다.

이는 자연 그 자체가 완결적이고 충족적이며 자기 활동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대해 차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연의 순수논리를 표현하는 '도 (道)' 는 인간의 개념이나 형상에 의해 포착될 수 없다.

개념이나 형상은 이미 자연과 그것의 순수한 논리인 '도' 를 인간중심적으로 파악할 것은 강요하기 때문이다. "말하여 질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며, 이름붙여질 수 있는 이름은 이미 같은 이름이 아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라는 '도덕경' 의 첫귀절도 이같은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단지 그렇게 이름붙인 것에 불과할 뿐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같은 논리는 최근 생태론적 자연해석에 많이 원용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바탕으로 자연을 인간의 착취대상으로만 파악한 근대 서양문명이 낳은 환경파괴를 넘어 '자연친화성' 을 강조하는 생태론적 해석이 그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자연관을 대변하는 고전과 '도덕경' 을 대비하면서 어떤 것이 바람직한 자연관인가를 묻는 논제가 가능하다. 최근 일부에서 제기된 서구의 자연관을 노자의 사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평가를 요구하는 논제가 출제될 수도 있다. 아울러 언어의 한계를 지적한 '도덕경' 의 첫대목도 논제로 출제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이와관련 '언어' 가 세계를 인식하는데 어떤 의의와 한계가 있는지를 묻는 것도 훌륭한 논제가 될 수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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