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공기업 민영화 미적거릴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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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는 대표적 공기업인 포항제철의 민영화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력의 경우도 화력발전만 떼내 매각한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타 공기업들도 처음 계획과는 달리 점점 민영화 강도를 낮추고 있다. 정부부처간의 갈등도 민영화의 암초가 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위원회는 공기업 민영화의 핵심인 경영권 고수와 매각방식을 놓고 상당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재경부는 민영화의 목적이 공기업의 경영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므로 경영권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 정부 보유주식을 처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획예산위원회는 공기업 주식매각을 통해 경제위기극복 및 개혁에 투입될 재원조달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선도하는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또다른 암초는 이해집단의 조직적 저항이다.

한국감정원.한국도로공사 등은 노조뿐 아니라 경영진도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맞서고 있다. 감정원은 감정평가 업무의 공신력 훼손을 들어, 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 운영권 매각에 대해 국가 기간도로망은 건드릴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이처럼 부처간 갈등과 이해집단간 조직적 저항이 계속된다면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공기업 매각 작업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시대적 조류다.

외화나 구조조정자금 마련만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민영화 목표는 변화에 둔한 공룡화한 공기업을 날렵한 경영구조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단순히 공기업의 비효율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보자는 것이다. 밀려드는 경쟁압력은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가리지 않는다.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융통성 없이는 미래의 경쟁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기술진보와 경쟁확산은 국가적 필요에 의해 설립됐던 공기업의 존재근거를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 수차례 경험했듯이 민영화에는 갈등과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거창한 계획이후 지연, 재계획이라는 면피성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이제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민영화의 방향과 원칙은 분명하다. 단순히 방법상의 문제나 기득권층의 반발이 민영화의 원칙을 묻어버릴 수는 없다.

해외자본 활용.지분보유 한도제.특별주 등 암초를 피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 대량 민영화의 소화가 어렵다면 가시적으로 민영화 효과가 드러날 수 있는 공기업을 택해 우선적으로 실시하면 될 것이다.

박영호 포스코경영연 경영컨설팅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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