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저널] 부동산 폭락…홍콩경제도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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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외환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홍콩 정부가 취한 금리 인상 조치가 부동산가격 폭락을 초래해 오히려 경제를 위기 국면으로 빠뜨리고 있다.

미 달러화에 대한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홍콩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인근 국가들이 외환위기에 빠지자 국제 투기자본의 공격을 막기 위해 주요 금리를 연이어 대폭 인상시켰다.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을 방지, 미 달러화에 대한 홍콩달러의 통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이는 홍콩 정부도 사전에 악영향을 예견했던 일종의 고육책이었다.

금리가 높아지면 일시적으로 외화자금 이탈을 막을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활동.가계소비 위축→수출 감소→무역수지 악화→외환보유고 감소 등의 악순환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의 상승에 따라 사무실 임대료와 주택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의 재할인 금리 인상의 부담을 기업.가계에 전가시키기 위해 시중은행들은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를 잇따라 인상시켰다.

홍콩은 전세계에서 부동산값이 가장 비싼 지역중 한 곳이며 은행들의 담보비율은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개인들이 사무실.주택을 헐값에 내놓기 시작했고 부동산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말 현재 홍콩의 사무실 임대료는 1년 전에 비해 38% 하락했으며 주택 매매가격도 34%나 떨어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금리인상으로 운전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부동산업체들이 가격할인 경쟁을 벌이고 있어 3분기중 부동산가격은 20%가량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으로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기업.가계의 부동산 수요는 자취를 감춰 관련 업체들은 줄줄이 파산하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을 담보로 엄청난 대출을 해준 은행들이다.

지난해말 현재 홍콩 금융기관들은 총여신의 44%를 기업.개인들의 부동산 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기업 파산으로 인한 부실 채권도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다 가계 소비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홍콩 경제는 공급과잉 속에 수요가 감소하는 디플레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기업 도산으로 실업률은 최근 10년 이래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홍콩 정부는 부동산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공공 임대주택 공급계획을 잠정 보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에선 홍콩이 고정환율제를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과감한 조치를 단행할 때가 도래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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