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새 ‘역사교과서 선정’ 뒤바뀐 사연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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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울산 모여고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지난해 11월27일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투표를 했다. 10여분이 흐른 뒤 나온 개표결과는 좌편향 논란을 일으켰던 금성출판사 것이 6대5로 두산출판사 것을 한 표차로 누르고 선정됐다. 운영위원장이 이를 공포하고, 투표용지 11장은 행정실 직원 A씨가 캐비닛에 넣어 보관토록 한 뒤 산회했다.

◆여고괴담=그런데 이튿날 아침 출근한 교장이 A씨에게 투표용지를 확인해보겠다며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30분쯤 독촉했는데도 가져오지 않자 교장이 행정실로 가보니 A씨가 투표용지 11장을 책상 위에 펼쳐놓은 채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전날 발표와 달리 5대6으로 금성교과서가 탈락한 결과를 확인하고 당황한 듯했다.

하룻밤새 정반대로 달라진 결과에 깜짝 놀란 교장은 교감·교무부장·전교조 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교감이 선관위에 질의한 결과 “투표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가 없다면, 일단 공표하고 나면 차후에 결과가 다른 것으로 확인돼도 공표한 효력을 뒤집을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전교조측은 “밤사이에 교장이 표를 조작한 의혹이 있으니 사법당국에 고발하겠다”며 크게 반발했다.

교장은 “선정결과를 바꿀 수 없고 학교가 시끄러워질 것이 염려돼서 전교조측의 동의를 얻어 사건을 묻기로 했다”고 말했다.

◆감사 착수=7개월이 흐른 이달초 이 사실을 알게 된 울산시교육청이 특별감사에 나섰다. 울산시교육청 신종문 감사담당관은 “교단에서 누군가에 의해 개표결과 조작이라는 지극히 비교육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며 “이를 밝혀내지 않고는 교육을 얘기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의혹의 시선은 투표당시 학운위원으로 감표위원을 맡았던 전교조 소속 B교사, 그리고 처음 개표했을 때와 다른 결과를 밝혀낸 교장에게 쏠리고 있다.

B교사는 애초부터 금성교과서 지지표는 5표뿐이었는데 두산교과서 지지표 1장을 금성교과서 지지표에 몰래 끼워 넣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교장은 밤사이에 금성교과서 지지표 가운데 1표를 두산교과서 지지표로 둔갑시켰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누가 거짓말?=B교사는 “(금성교과서를 지지하는 전교조측이 소수였는데)의외의 결과가 나온데 놀라서 확인했다. 나뿐 아니라 학부모위원 1명도 감표했고, 간사(행정실장)도 확인했다. 조작이나 착오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장이) 의심이 들면 그자리에서 확인해야지 하룻밤을 넘긴 게 이해가 안간다. 회의가 끝나고 오후 8시쯤 학교장이 학교로 돌아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며 교장의 밤사이 조작의혹을 제기했다.

교장은 “개표결과에 기가 막혀 그자리에서 확인할 생각을 못했다. 오후 8시경에 교감·교무부장과 술을 마셨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 조작하려면 행정실과 캐비닛 열쇠가 있어야 가능하다. 학교운영위원장의 도장을 찍어야 새 투표용지를 만들수 있다. 최소한 두세명의 도움이 있어야하는데 정년 1년을 남겨두고 그런 위험한 일을 왜 하겠나”라고 주장했다.

◆수상쩍은 A씨=밤사이 투표용지를 보관했던 행정실 직원 A씨는 이튿날 교장이 “다시 보자”고 했을 때 30여분간 머뭇거렸다. 투표용지를 책상 위에 놓고 혼자서 표가 뒤바뀐 사실을 확인했던 것도 드러났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캐비닛에 넣기 전에 개표조작 사실을 미리 알았거나, 밤사이 누군가 캐비닛에 손을 대고 조작한 흔적을 발견했거나, 본인 스스로 조작한 뒤 교장이 확인하려들자 당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문감식 등이 필요할 경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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