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무엇을 위한 책임운영기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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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입장료는 25세 이상 성인이 700원. 기획전이 열리면 몽땅 보는 값이 2000원이다. 올 여름 '블록버스터 전시'로 꼽히는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일반 관람료가 1만2000원,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이 1만원이니 국립이라 해도 싸기는 참 싸다. 하지만 동전 몇 개로 국립미술관에 들어가던 추억은 먼 옛날이 될지도 모를 일이 생겼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11일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정신병원 등 13개 기관을 내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책임운영기관이 되면 개방형으로 공개 채용된 기관장이 인사와 예산 운영 등을 맡아 자율성이 커지지만 경영과 공익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 한마디로 미술관을 상업화해 관람객 많이 들고 돈 많이 버는 전시회를 부지런히 만들면 국민은 향상된 서비스를 받아 좋고 기관은 효율성과 독자성을 높일 수 있어 좋다는 것이 행자부의 설명이다.

미술관 사람들은 단박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004년 1년 예산 213억원에 입장료 수입 예상은 3억10만원인 국립현대미술관이 돈벌이에 내몰리면 정작 전시와 연구, 작품 수집과 보존, 사회교육 기능 등 본연의 임무가 일그러질 수 있다는 항변이다. 미술관의 한 관계자는 "설사 돈을 번다 해도 전시를 본 이들이 느끼고 배운 것은 어떻게 수치로 재려느냐"고 되물었다.

현재 문화관광부에 속해 있는 기관 중 책임운영기관은 2000년부터 시행해온 국립중앙극장 하나로 관객수가 늘고 극장 가동률은 높아졌지만 역시 예술성을 셈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행자부 또한 13~14일 천안에서 연 책임운영기관 워크숍에서 "그렇게 좋은 제도인데 왜 행자부 산하 기관 가운데는 책임운영기관이 하나도 없느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문화부는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니므로 행자부와 연말까지 법적 명문화나 여론 수렴 등을 거쳐 의견을 조율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미술 동네의 사태 파악은 냉정하다.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는 "문화 현장을 잘 모르는 행정 편의주의, 공공성을 해치는 탄력없는 개혁의 본보기"라고 잘라 말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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