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공작 진상]남북 정보기구 합작 김대중후보 떨어뜨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북풍공작은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과 안기부 정치공작의 합작품이다.' 지난 3월부터 북풍공작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온 검찰 수사팀이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김대중 (金大中) 후보의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북한당국과 안기부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가운데 오익제 (吳益濟) 씨 편지사건 등 일련의 북풍공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선 당시 여야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북한 당국자들과 접촉하면서 북한당국의 공작에 말려든 흔적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대남공작 = 북한은 지난해 7월부터 통일전선부와 국가안전보위부가 합동으로 '대선 공작반' 을 구성, 중국 베이징 (北京)에 요원들을 파견하고 공작 활동을 벌였다.

북한의 의도는 남북 관계 주도권 장악을 위해 '노련한 정치인' 의 당선을 막고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후보가 당선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吳씨가 金후보에게 보낸 편지 겉봉에 의도적으로 평양이란 발신지를 표기, 수사당국에 입수되도록 했고 '이북 인사들도 후광선생의 대승을 기원하고 있다' '김정일 영도자의 노작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는 등 金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을 삽입한 것도 이같은 북한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편지는 북한의 의도대로 안기부에 의해 공개됐으며 특히 안기부는 공작원을 통해 吳씨가 편지를 보낼 계획이란 정보를 미리 입수했던 것으로 드러나 양측 당국간의 사전교감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대북 접촉 = 정치인들은 북풍공작의 '조연' 역할을 자청, 결과적으로 '김대중 후보가 북한과 모종의 밀약을 맺었다' 는 선전공작에 말려든 셈이 됐다.

대선 당시 여야 3후보측은 제각기 중국교포.방북사업가.안기부 공작원 등의 중개인을 통해 안병수.리철.강덕순 등 북한 고위당국자를 경쟁적으로 접촉했다.

특히 안병수는 이인제 (李仁濟) 후보의 동서인 조철호 (趙哲鎬) 씨에게 李후보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며 "대선에서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느냐" 고 물어오기도 했다. 이른바 '이대성 파일' 에 담긴 의혹중 기초적인 정보는 상당부분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한나라당 정재문 (鄭在文) 의원이 북풍을 일으키는 대가로 3백60만달러를 제공했다 ▶국민회의측이 북풍을 막아주는 대가로 집권하면 자금지원.경제협력을 약속했다^정동영 (鄭東泳) 의원이 공작원을 통해 金후보의 대북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등 무성한 의혹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실무근' 이거나 공작원의 정보보고에 불과해 '확인이 불가능하다' 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당사자의 진술을 받아들인 것일 뿐 의혹을 파헤치기에는 수사가 미진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가령 정재문 의원의 경우 북한당국자와 접촉, 합의문을 작성했다는 참고인 진술까지 확보했으나 자금추적을 벌이지 않은 점이 단적인 예다.

이 때문에 '이대성 파일' 에서 거론된 의혹들은 수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예영준 기자

〈yyju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