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외무회담]한국-경제 일본-외교 실리주고받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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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도쿄 (東京) 의 한.일 외무장관 회담 (22일) 과 박정수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의 방일 (訪日) 현장에서 양국은 철저히 '실리위주 외교' 로 현안 해결을 진전시키는 새 양상을 보였다. 과거사의 쟁점화 대신 서로 경제적 (한국측).외교적 (일본측) 실익을 얻겠다는 것이었다.

우리측은 우선 일본 어민과 수산족 (水産族) 의원들의 항의가 가장 거셌던 일본수역에서의 '조업 자율규제 중단' 을 철회해주었다. 우리 정부는 그간 홋카이도 (北海道).서 (西) 일본 수역에서 우리 어선의 어업을 자율규제해왔다.

그러나 지난 1월 일본이 어업협정 파기를 선언하자 맞대응으로 자율규제를 중단한 이후 일본 어민은 우리측의 '무차별 남획' 을 비난하며 의원들을 동원, 외무성에 압력을 가해왔었다. 우리측은 어차피 어업협정 자동폐기 시한인 내년 1월이면 약효가 떨어지는 '자율규제 중단' 대신 우리 어민의 실익 (實益)에 최우선인 '과거 어업실적 보장' 과 몇개 쟁점의 양보를 받는 맞교환을 한 것이다.

일본의 대한 (對韓) 수출금융 10억달러 지원을 재확인하고 투자확대.관세인하 등을 적극 요청한 것도 "화급한 IMF 위기 극복에는 원만한 대일 (對日) 관계가 긴요하다" 는 판단이 우선해서 였다. 반면 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는 양국이 사실상 기존입장을 반복하는 선에 그쳐 대비를 이뤘다.

일본 지도층은 특히 경기침체 등 내치 (內治) 의 문제와 7월 참의원선거 등에 부닥쳐 '시끄러운 한.일관계' 가 부담이라는 입장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일본측은 혹 반일 (反日) 분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천황' 호칭 문제도 거론치 않았고, 나카소네 전총리는 "천황 방한은 한국내 분위기가 조성된 후로 추진하라" 는 조언까지 슬며시 했다.

다케시다 노보루 (竹下登) 전총리는 어업문제의 최대 강경파인 자민당의 사토 고코 (左藤孝行) 어업특위위원장.아오키 미키오 (靑木幹雄) 수산부회장 등을 朴장관과의 오찬에 대거 '소집' 하기도 했다.

이런 기류로 양국관계는 당분간 급진전될 전망이지만 미완 (未完) 의 '과거사' 문제 정리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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