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속의 한국기업들]중.악성채권 10억불 떼일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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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자카르타 도심에서 45㎞ 떨어진 나로공 지역에 H사가 이달초 완공한 연산 2백60만t 규모의 시멘 치비농 시멘트공장. 이 회사 徐모 지점장은 공사대금 중 4천만달러를 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19일 싱가포르 지사로 피신한 徐지점장은 전화통화에서 "루피아화 환율이 너무 오르는 바람에 공사비 회수가 막막하다" 며 "협의는 하고 있으나 언제 받을지 알 수 없다" 고 말했다.

또 H종합상사 주재원 金모 (35) 과장은 자카르타 중심가 도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도심 뒷길을 이용해 업무를 보면서 외상 수출대금 회수방법을 짜내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이 미수금을 회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기업부도 제도가 아예 없는데다 소송을 통해 채권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 '못주겠다' 고 나오면 속수무책인 형편이다.

한국 기업들의 대 (對) 인도네시아 미수금은 ▶금융채권 44억5천만달러 ▶수출대금 9천7백80만달러 ▶건설 공사를 끝내고 받지 못한 8천4백만달러 등 모두 46억3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중 10억달러는 나중에도 회수가 어려운 악성채권이다.

이에 따라 채권회수를 위한 대책이 절실한데도 별다른 수단이 없어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정부가 무역협회 등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채권 해결에 나서고 있어 우리와 대조를 이룬다는 게 현지 업계의 지적이다.

일본 무역협회는 지난 1월 대장성의 공식후원을 받아 미쓰이.미쓰비시 등 6대 종합상사를 포함시킨 채권회수 특별팀을 결성,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행개혁위원회 등과 수차레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 97년말 현재 일본은행들의 현지 투.융자액은 2백30억달러 (97년말 현재) 며 6대 종합상사의 투.융자액은 2백50억달러. 이토추상사 현지주재원은 "채권회수 특별팀은 회원사들의 문의를 받아 인도네시아 정부측의 답변을 받아주며 지급보증과 조건변경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고 전했다.

국내 S상사 주재원은 "미수금 회수와 관련해 궁금한 게 많으나 어디에도 문의할 곳이 없다" 며 "일본측이 현지 정부고위관계자들을 만나러 다닌다는 것 자체가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것" 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정부는 관련정보를 업계에 알려주고 있으나 우리는 산업은행 싱가포르 지점이 대표로 참여한 국제민간채권위원회의 회의자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들은 자금 여력을 바탕으로 현지기업의 미수금을 지분과 맞바꿔 현지기업을 인수하는 공격적 전략도 채택하고 있다.

일본 히타치사는 지난달 1일 미수금을 갖고 있던 현지 합작회사인 P T H 컨스트럭션 머시너리의 지분을 완전히 인수했다.

현재 한국정부는 민간채무에 대해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대지급토록 추진하고 수출대금을 현지자원과 맞바꾸는 방식을 추진한다는 입장. 그러나 현지 국내은행지점 관계자는 "현실성이 전혀 없다고 본다" 며 "우선 정부가 민간업체와 손을 잡고 정보를 입수하고 시나리오부터 짜야 한다" 고 말했다.

이영렬 기자

〈young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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