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6·4지방선거 보는 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란 난리 속에 나라가 온통 근심에 싸여 있어도 선거는 다가왔고 너도나도 열전을 준비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기왕지사 당한 일이니 상심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모든 것 잊고 팔을 걷어붙이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선거가 온 국민이 심기일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판의 조짐은 그리 좋지가 않다.

이런 난국에 정치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근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렇게 생각하며 자위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후보 이합집산과 상호비방이 시작됐고 지역감정 동원과 막판 물량공세가 지평에 보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지역은 없고 중앙정치만 한국 정치의 민주화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번 지방선거는 넘어야 할 중요한 고비가 있었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서고 몇달 안된 상황에서, 그것도 여야간 대치정국이 불안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니 지방자치선거 본연의 의미를 음미할 겨를도 없이 중앙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고비를 넘기기는 커녕 후퇴하지 않나 걱정되기도 한다.

6.4 지방자치선거는 과거의 선거에 비해 비교적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는 좋은 여건 속에 있다.노골적으로 관권이 개입할 소지가 적어졌으며, 무제한적 자금살포의 길도 막혔다.

신속한 선거재판은 불법.탈법을 일삼던 후보들을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됐으며, 명함 쪼가리가 나뒹굴고 현수막이 홍수를 이루는 광경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됐다. 이만 하면 정치가 발전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적 경쟁의 규칙이 자리를 잡아가는 가운데 느끼는 공허함이다.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하는 근본적 회의가 이는 것이다.

지방선거의 쟁점은 당연히 지역주민의 삶이어야 한다. 따라서 중간평가니, 정계개편이니, 여당이라야 힘이 실린다느니 하는 소리는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90년대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은 권위주의적 중앙정치세력이 민주화 명분에 밀려 할 수 없이 허락한 것이다. 그들은 '지방정치' 라는 말이 사용되는 것을 꺼렸고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이양하거나 재정적 기반을 확충해 주는데 인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주민들이 진정한 자치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힘들었고, 지역주민의 삶은 선거의 쟁점이 될 수 없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선거' 에만 열을 올리고 '지방자치' 그 자체를 쟁점으로 삼고 있지 않으니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역주민의 삶이 이슈로 떠오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재 이 정도의 민주화를 달성하게 된 데는 국민적 저항과 참여에 힘입은 바 크지만 또한 지역주의라는 별로 명예롭지 못한 행태가 한 몫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정치권은 아직도 위만 쳐다보며 보신 (保身) 을 일삼는 구시대 정치가로 가득 차 있고, 이들이 한국정치 민주화의 최대 장애가 되고 있다.

人材 키워주는 투표를 지방선거는 민초 (民草) 들이 주체적으로 새로운 인물들을 충원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정치에 기적을 바랄 수 없다.

3류가 들어가면 3류 정치가 나오는 것이다.지방선거는 대부분이 초급 지도자들이기는 하지만 일류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

현 상황 아래서는 정당도 믿을 것이 못된다.그렇다고 지역선거가 돼서도 안된다.

이제는 지역에서 사람을 키울 때다. 단체장.의원, 기초.광역, 경중을 가리지 말고 열심히 후보에 대해 공부하고 지역에서 뿌리내린 키울 만한 인재에게 희망을 주는 투표를 해야 한다. 일류정치를 위해 한 그루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趙重斌국민대교수정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