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검찰의 공과 , 냉철한 접근 요구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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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수개월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사건 수사 결과가 지난주 발표됐다. 핵심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봉인된’ 수사 기록으로만 남게 됐다.

이번 수사 도중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상할 수 없는 변고’가 일어났다. 그 여파로 검찰총장이 사퇴했고, 검찰에 대한 책임론과 개혁론이 대두하고 있다. 중수부를 폐지하고 공직자 부패수사를 전담하는 제3의 수사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아예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빼앗아 버리고 검사를 선거로 뽑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검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대사에 있어 실로 비극적이고 애통한 일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심각하게 되짚어 보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연 수사를 검찰에서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하여는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건국 이래 60년 동안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 수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검찰이 서 있었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현직에 있는 대통령의 아들과 주변 측근들을 비리 혐의로 구속하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당대의 부패 사건들을 검찰이 나서서 수사했다. 정치권이나 언론은 권력형 비리 혐의가 나오면 검찰이 나서서 빨리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최고의 법률전문가 조직인 검찰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컸고, 검찰이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에 적잖이 공헌한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역사에 가정(if)은 없다고 하지만, 이번 수사를 경찰에서 할 수 있었겠는가. 공수처가 있었다고 하여 검찰보다 더 세련되게 수사하고 브리핑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실망이 크다고 지금까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자 노력해 온 검찰의 가치를 하루아침에 짓밟아 버려서는 안 된다. 검사를 선거로 뽑자는 등의 단편적이고 선동적인 주장들은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독일·프랑스에서도 당연히 검찰이 중요 사건을 직접 수사할 뿐만 아니라 수사기능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영미법계 국가인 미국의 검찰도 중요 사건에 대하여는 직접 수사를 하고 법률전문가로서 경찰을 지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방의 검사를 선거로 뽑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나 여론의 영향을 받아 중립적인 사건처리가 어려우므로 어떻게 하면 이런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우리 사회에서 검찰의 공과(功過)를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건국 이래 사정의 중추기관으로 역할을 해 온 검찰의 노력을 인정하고, 보다 건강한 검찰로 만들기 위해서 미흡한 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까지의 수사관행과 수사기법, 수사상황 브리핑과 보안유지 등에 대한 문제점이 있으면 이를 바로잡고, 수사와 언론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받치는 감정보다 냉철한 이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진실로 국민에게 도움을 주고 신뢰를 받는 검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슬기로운 의견 제시와 논의가 전개되기를 바란다.

조균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