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모 감독 '아름다운 시절' 칸영화제서 호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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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15인의 감독주간' 에 초청받은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이 16일 (한국시간) 노가 힐튼극장에서 공개됐다. 아직 국내에서도 개봉이 안 된 데다, 감독주간 집행위원장의 극찬으로 신인감독상의 가능성이 높아 극장은 일찌감치 많은 관객들로 붐볐다.

'아름다운 시절' 은 한 편의 영상시 같았다.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접어든 52년 어느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초등학생인 성민의 시선으로 극악스러운 생존의 갈등을 담았다.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가 연명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의 주선으로 매춘을 해야 하고, 그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물건을 빼돌리다 쫓겨난다. 미군과 연애하던 누나는 아이를 배지만 미군은 떠난다.

영화는 천막학교에서 풍금에 맞춰 '고향의 봄' 을 부르는 아이들의 천진한 목소리처럼 아픔을 삭인채 살아남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스함을 감춘 담담한 시선으로 포착해냈다. '아름다운 시절' 이 기존의 한국영화와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클로즈 업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대신 롱 숏과 롱 테이크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안성기.송옥숙.명계남.배유정.유오성 등 낯익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카메라는 배우들의 얼굴을 감추고 실루엣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인간이 자연과 사회적 환경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습을 잡아내는데 주력한 것이다.

시사 후의 반응은 '뛰어나다' 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뷰티풀, 뷰티풀" 을 되뇌이며 나가는 관객도 눈에 띄었고, 일부에서는 "신인감독의 영화가 맞느냐" 고 묻기도 했다.

소니클래식, 미라막스 같은 배급사들과 베를린영화제측에서도 관심을 갖고 영화를 지켜봤다. 상영이 끝나자마자 프랑스의 아르떼 방송이 이감독과 인터뷰를 가졌다 상영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외국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왜 제목이 '고향의 봄' (영어제목) 인가" 라는 물음에 이감독은 "그건 한국의 유명한 동요" 라며 "이 노래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 즉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 있다" 고 말했다. "왜 롱테이크로 일관했느냐" 는 질문에 대해 이감독은 "회상적이고 가만히 들여보는 듯한 응시적 시선을 표현하고 싶었다" 면서 "내가 직접 개입하고 일일이 보여주기 보다는 관객이 거리를 갖고 응시함으로써 상상력을 갖고,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싶었다 "고 답했다.

칸 =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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