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 다 바친 직장 떠나지만 회사 살리는 불씨 되었으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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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77년 4월 하동환자동차(쌍용차 전신)에 설레는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강산이 세 번 하고도 2년이 흘러 이제 정든 직장을 떠난다. 사정이 어려운 회사를 두고 먼저 떠나게 돼 죄송하다. 저는 비록 못 했지만 남는 분들은 꼭 역경을 이겨 내고 우량 기업으로 거듭나 후배들에게 물려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평택공장 물류운영 2팀 기성 Y씨)

최근 쌍용자동차 경영정상화 방안에 따라 희망퇴직을 한 직원들의 사내 편지 중 하나다. 쌍용자동차 희망퇴직자 400여 명은 외부인은 볼 수 없는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 ‘비전 넷’에 한마디씩 글을 올렸다. 쌍용차는 8일 2646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했다. 이 가운데 1670명은 희망퇴직했다. 이들은 근속 연수에 따라 5∼9개월의 평균 임금을 위로금으로 받았다. 나머지 정리해고 대상자 900여 명은 파업에 참가, 이 날짜로 해직됐다. 쌍용차 노조는 이런 구조조정에 반발해 공장을 점거한 채 11일 현재 21일째 파업 중이다.

희망퇴직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은 대부분 게시판에 “현재의 쌍용차를 만든 것은 선배의 잘못이니 후배들은 반드시 쌍용차를 재건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경인지역본부에서 근무했던 H씨는 “22년간 청춘을 바쳤던 쌍용차! 입사 초년도에 8㎏ 이상 몸무게가 빠질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회상하며 “코란도 훼미리를 시작으로 프레임 부품 이름을 외우고 조립라인에서 새까만 얼굴로 하루를 보냈던 시절, 벤츠와 기술 제휴로 밤을 새워 가며 일했던 기억들이 새롭다”고 썼다. 그는 이어 “무쏘 작업을 위해 추석 휴가도 반납했고 부도난 부품업체를 찾아 결품을 막고자 불철주야 뛰어다닌 추억들이 쌍용차를 살리는 불씨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평택공장 물류운영팀의 E씨는 “쌍용차는 내 일생을 바쳐 삶의 보람을 찾은 곳이다. 가정을 이끌며 부모·자식을 먹여 살리고 성장시켰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라며 “그러나 후배들에겐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이 모든 게 선배들이 잘못해 회사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글을 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무쪼록 쌍용 가족의 힘과 지혜를 한곳으로 모아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기원한다”며 글을 끝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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