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展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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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르네상스를 흔히 자연과 인간을 재발견한 시대라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재발견' 이란 새로운 기운, 요즘 말로 하면 첨단사조가 싹텄던 때였다.

르네상스 시대라 해도 실제 생활과 사회를 형성하는 기본 구조는 역시 기독교였다. 그 한 가운데를 살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주문받은 그림 역시 초상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태고지' 나 '최후의 만찬' 등 성경이 주제였다.

그러나 다 빈치가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현세적인 주문을 받았을 때라도 자연에 대한 탐구 속에서 이를 풀어내려 노력하고 거기서 성공을 거둔데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 (6월14일까지.02 - 580 - 1234)에서 열리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전' 에 전시된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드로잉' 과 '암굴의 성모' 는 천재로 이름 높은 그의 명성을 직접 회화를 통해 엿볼수 있는 좋은 예다. 원작 '동방박사의 경배' 는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우피치미술관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작이다.

이번에 전시된 스케치는 원작의 공간 설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가를 한 눈에 보여주는 드로잉이다. 다 빈치는 화가가 되려는 지망생들에게 "원근법을 배워라"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에서 태어난 응용을 따르라" 고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응용에 대한 경고도 했다. 말하자면 원근법은 응용이지 궁극의 목표는 아니란 것이다.

다 빈치가 꿈꾼 회화의 목표는 자연의 근원탐구였으며 회화는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그의 이러한 자세는 '암굴의 성모' 에서 한층 잘 나타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례요한과 성모 그리고 아기예수와 천사다. 그림 왼편 세례요한의 동적 (動的) 모습은 우선 보는 사람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성모의 손에 의해 화면 중심으로 옮겨갈 듯한 세례요한에서 중심을 아기예수 쪽으로 기울인 성모 그리고 세례요한을 가리키면서 다른 손으론 아기예수를 중심으로 밀어넣는 천사와 그 앞에 있는 아기예수로 시선이 이어지게 한다. 시선이 멈추는 곳에서 아기예수와 성모와의 관계가 드러나게 되어있는 구도다.

이렇게 한 바퀴 돌고나면 이들을 감싸고 있는 배경으로 시선이 옮겨가게 된다. 바람에 마모되고 습기에 이끼낀 바위들과 그 틈새로 솟아난 섬세한 풀포기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멀리 밝아지는 동굴 - .이들이 이루는 신비한 조화는 마치 태초의 자연을 상상케한다.

도대체 성모자 (聖母子) 이야기에 왜 이러한 동굴이 등장하는가. 동굴은 그가 탐구하려한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한다.

비록 주문받은 그림이지만 성스러운 가족 역시 당시로는 자연의 일부였기에 과학적인 구도속에 탐구의 대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다 빈치의 회화적 성공과 그 신비한 매력은 바로 이같은 자연의 근원을 향한 그의 끝없는 추구에 있었다.

이은기 〈목원대 교수·르네상스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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