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공언뒤 발빨라진 여권 2단계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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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정계개편을 공언함에 따라 야당의원 공략을 위한 여권의 움직임이 빨라졌다.국민회의는 이번주중 한나라당의 국회의석 과반수 점유상태를 무너뜨릴 작정이다.

현재 한나라당 의석은 1백48석. 여기서 3석만 줄면 과반수는 붕괴된다. 국민회의는 한나라당 의원 5~6명을 당장 영입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들은 대개가 수도권 출신이다. 국민회의는 "야당의원을 빼내서라도 정국안정을 이뤄야 한다는 게 국민여론" 이라고 한 金대통령의 10일 발언을 떠올리며 기필코 영입을 성사시키겠다는 각오다.

실제 국민회의로부터 집중적인 회유를 받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상당히 흔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게 金대통령 구상의 최종 도달점은 아니라는 게 여권 고위관계자들의 얘기다.

그 정도론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金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정치권 재편, 말하자면 대 (大)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음은 틀림없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11일 자세한 언급을 회피하면서도 "아무튼 대통령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 자신있게 밝혔다. 청와대가 10일 金대통령의 '국민과의 TV대화' 에 앞서 언론에 배포한 보도참고자료도 '대대적' 정계개편과 관련, 시사하는 바 크다.

자료는 金대통령이 정계개편과 관련한 질문을 받을 경우 "개혁을 지지하는 모든 세력과 손잡겠다" 고 답변하는 것으로 돼 있다. 金대통령은 TV대화에서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언급은 했다. 그는 '과거인물 등용이 잘못된 것 아니냐' 는 질문에 "과거사람을 쓰더라도 과거 정부의 철학과 원칙은 안따른다" 고 정색했다.

'국민의 정부' 를 지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과거를 불문하고 문호를 열겠다는 분명한 시사다.

세력재편을 위한 명분을 다져 놓은 셈이다.金대통령은 그러나 6.4지방선거까지는 서두르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한나라당 의원 빼내기만으로 충분하다는 국민회의 고위관계자의 전언이다. 6.4 선거전 한나라의 과반수만 무너뜨리면 선거 이후 대대적인 세력재편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그러잖아도 각종 여론조사가 여권의 압승을 예고하는데 한나라당의 과반수 벽까지 무너지면 6.4선거에서 여권이 완승할 수 있고, 이후 대대적 정계개편은 '무리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는 설명이다. 여권은 특히 서울.인천시장과 경기지사 선거에서 한꺼번에 승리할 경우가 쏠림현상이 더 크게 작용하리라고 본다.

당연히 여권은 '개혁' 을 명분으로 한나라당 초.재선의원을 대거 흡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될 것이고, 한나라당의 다른 지역출신 의원이나 국민신당 등 다른 정파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계산도 하고 있다. 金대통령은 바로 이걸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6.4선거 결과가 여의치 않을 경우 대개편 구상의 실현에는 큰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는데 여권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단언한다.

이상일 기자 〈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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