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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회장 소떼 1천마리 몰고 방북…고향에 보은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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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정주영 (鄭周永) 현대건설 명예회장이 이달 안으로 소떼 1천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을 수 있을까. 북한측은 지난 4일 鄭명예회장측과 소떼의 판문점을 통한 방북을 전격 받아들였다. 이에 통일부는 민족내부거래절차에 준해 검역.통관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하겠다며 적극 협력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따라 현대측은 15일께는 판문점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현대측은 서산농장에서 기르고 있는 소 1천7백마리에 대해 7~9일 검역작업을 실시했고 북으로 갈 소 1천여마리는 이미 준비된 상태다. 鄭명예회장도 이를 지켜보기 위해 7~8일은 농장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협상이 다소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하다.

현대측 관계자는 "15일 방북은 어려울 듯하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달내 방북은 가능할 것이라며 여전히 의욕을 보이고 있다.

1천마리의 소떼를 이동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鄭명예회장측은 소 수송방법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나 차량을 이용한 수송이 유력하다.

서산의 소들은 鄭명예회장의 지시로 고삐없이 방목하고 있는데다 숫자도 많아 현대측도 수송방법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

특히 차량으로 1천마리를 싣고 가려면 최소한 1백여대 이상의 트럭이 동원돼야 하는데 이를 몰고갈 운전기사들의 방북을 북한이 허용하느냐도 걸림돌이다.

또 국내 검역과 통관은 통일부의 협력에 따라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측은 판문점을 통한 첫 생물 (生物) 교환의 선례라는 점에서 검역 등 각종 절차마련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

鄭명예회장의 '소떼의 방북계획' 이 알려지면서 항간에는 "웬 소를 몰고 가느냐" 는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鄭명예회장은 고향인 강원도통천에서 세번 가출했다. 두번은 실패하고 소판 돈 70원을 훔쳐 달아난 마지막 가출 이후 국내 1위의 재벌로 성공한다. 말하자면 소는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고향에 대한 보은의 선물인 셈이다.

그의 소사랑은 사실 남달랐다. 94년 서산에 1백50여마리의 소를 방목하기 시작하며 농장에 갈 때면 늘 축사에 먼저 들르는 것이 습관이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鄭명예회장은 최근 발간한 회고록 서문에 "서산농장의 소는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고향을 지킨 아버지에 대한 때늦은 아들의 선물" 이라며 '소' 는 아버지이며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번 '소떼의 방북' 은 결국 한 마리의 소를 판 돈을 밑거름으로 부를 일구어낸 청년 정주영이 뒤늦게 고향에 소를 돌려주는 의식인 것으로 보인다.

양선희 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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