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환란조사, 그 목표와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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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환란 (換亂) 책임을 수사해 온 검찰이 강경식 (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에 대해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김인호 (金仁浩)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에 대해서는 같은 혐의를 적용하되 姜전부총리에 대한 영장 처리과정을 지켜본 후 구속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로써 외환위기, 개인휴대통신 (PCS) 사업자 특혜선정 의혹, 기아 늑장처리, 종금사 무더기 인허가 비리 등 동시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던 김영삼 (金泳三) 정부의 네가지 경제실정 가운데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환란부분이 먼저 마무리된 셈이다.

환란 감사와 수사는 원래 진상을 정확히 밝혀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본질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드러난 개인의 비리.부정 등 위법 사실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수적인 일이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를 거쳐 검찰수사까지 일단락됐지만 아직도 환란의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무엇 때문에 초래됐는가를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환란이 자칫 이들 2명만의 잘못인 것처럼 결론지어진다면 본질을 벗어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와서 검찰 답변서 대신 청문회에서 증언을 들어야 한다고 나서는 것도 사건의 본질을 덮어둔 채 처벌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환란 수사를 둘러싸고는 정책판단에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과 국난을 초래한 잘못이 워낙 막중하므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이 형사처벌 쪽으로 방향을 잡고 '직무유기에 새 판례를 구해보겠다' 는 각오를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범이 아닌데다 주거가 확실하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현직 국회의원에 대해 불구속수사 원칙을 외면하고 굳이 구속키로 한 것이 합당한 것일까. 인신구속 문제가 정치문제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불구속기소로 사법부에 판단을 맡기는 것이 명분이 있다는 의견도 깊이 고려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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