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기의 경제 이렇게 풀자]1.우선순위 빨리 정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금융 구조조정, 기업 구조조정, 실업대책과 고용안정, 정부개혁 등 경제 각 부문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추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순위 없이 한꺼번에 추진되는 각종 대책들은 마치 엉켜있는 실타래를 이쪽 저쪽에서 마구 잡아당기는 것처럼 일을 더 꼬이게 만들 수 있다.우선순위를 정하고 속도조정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 한꺼번에 구조조정할 돈이 없다= 구조조정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 예상된다. 은행의 구조조정만 해도 지금의 부실채권을 해소하는 데만 63조~67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에 재벌들이 계열사간 상호 지급보증을 해소하고 부채비율을 2백%로 감축하는 데는 더욱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7조9천억원을 책정한 실업자 대책도 이미 더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을 한꺼번에 하겠다는 것은 이 모든 재원이 동시에 마련돼야 함을 의미한다. 간단히 생각해 봐도 국내 재원 동원 능력을 벗어난 규모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재원을 동원하려는 경우 주가.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폭락하고 금리는 급등해 더 깊은 불황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다.

◇ 대외 신뢰 제고를 통해 외자도입을 촉진시킬 수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한국경제의 운용능력에 대한 대외 신뢰가 무너져 촉발됐다. 그 신뢰를 회복하려면 한국경제가 구조조정에 관한 우선순위.일정 등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 이를 추진할 의지가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 핵심은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부실기업.부실금융기관의 정리, 개별 부문의 구조조정에 관한 우선순위와 원칙, 그리고 세부절차가 담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마스터 플랜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경제의 구조조정 의지를 믿게 되고, 탈출했던 외자가 돌아온다.

◇ 우선순위를 빨리 정해야 구조조정 비용이 줄어든다=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아 개별 부문 중에는 '혹시 더 버티면 구조조정압력을 줄여주겠지' 하는 도덕적 해이 (解弛) 도 엿보인다. 또 개별 이익집단의 조직적인 반발로 필연적인 구조조정 과제가 사회문제로 변질.확산됨에 따라 정치논리에 의해 구조조정이 더 지연되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도덕적 해이에 의한 구조조정 지연으로 개별 부문의 부실이 더 심화돼 구조조정 비용이 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데 있다. 68조원의 부실채권이 불경기와 부도 증가로 연말이면 1백조원를 넘을 것이고, 실업자가 올해안으로 2백만명을 넘어 실업대책비가 지금 수준의 배를 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예사롭지 않다. 또한 구조조정하려고 자산을 팔려해도 우선순위 없이 마구잡이로 구조조정을 강요하다 보니 원매자의 기업자산과 부동산값 하락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실제 거래가 지연되고 기업은 더 많은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식으로 부담이 늘어난다.

◇ 부실의 악순환을 경제회생의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다 =기업.금융기관.정부.고용 등 경제 각 주체들의 부실은 서로 연결돼 있다.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서로 도움이 되지만 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는 자력 회생에 서로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래서 노조는 재벌.정부에, 재벌은 노조.금융기관에, 정부는 재벌.노조에 "네가 먼저 개혁하라" 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어느 부문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여타 부문의 구조조정이 더 쉬어지고, 그 비용도 줄어든다.

어느 부문이든 일단 개별 분야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부실의 악순환 관계가 구조조정의 선순환 관계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엉켜있는 실타래도 일단 풀리기 시작하면 점점 더 쉬워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김정수 전문위원

〈econop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