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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끝자락에 사람 냄새 나는 예술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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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낙동강 1300리(514㎞) 끝자락인 경남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 도요마을. 바다와 합쳐지는 게 아쉬운 낙동강이 휘감아 돌며 만든 강마을이다. 넘실대는 강물을 보고 오던 비도 되돌아간다는 뜻이 마을 이름에 담겨 있다. 83가구 141명 주민이 강 둔치 모래밭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재배하는 한적한 동네다.

이윤택씨가 낙동강가에서 “이곳에서 벌어질 축제를 상상해보라”며 포부를 밝혔다. [김해=송봉근 기자]


이 외진 곳에 연출가 겸 극작가인 이윤택(57)씨가 둥지를 틀었다. 김해시와 함께 도요마을을 예술공동체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한 달 전부터 한 주에 3~4일씩 내려와 도요 예술공동체 조성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이씨는 ‘문화 게릴라’란 별명 그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이 난 모습이다. 이미 경남 밀양에 연극촌을 만들어 성공시킨 이력이 있는 그답게 자신감이 넘친다. 문학· 미술 ·공연 분야 예술가들이 작업실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1년 내 전시회와 공연이 이어지면서 방문객들이 마을 이곳저곳에서 예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그는 꿈꾸고 있다.

“도요 예술공동체 조성은 내 인생에서 벌이는 마지막 큰 도전입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너무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이라 한숨이 나와요. 사람냄새 나는 마을을 만들어 예술이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 보여주렵니다.”

이윤택씨가 그린 밑그림을 따라 설계도도 이미 나왔다. 마을 중심에 서있는 폐교는 각종 발표와 워크숍을 할 수 있는 사랑방으로 만든다. 마을 주변 빈집을 사들여 예술인 숙소, 연기 훈련장, 출판사, 카페, 방문객 숙소 등으로 수리한다. 도요 예술공동체는 필요없는 공간을 재활용하면서 마을에 예술이 스며들어 자연스레 예술촌이 되는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김해시도 대환영이다. 도요 마을이 주거지역이어서 문화시설을 못 짓게 돼 있지만 조례를 바꿀 정도로 적극적이다. 김해시 남부광(47) 예술담당은 “ 이농현상으로 늘어나는 빈집을 활용해 예술촌이 들어선다면 농촌을 되살리는 바람직한 예가 될 수 있어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 예술공동체 조성 계획이 알려지면서 입주를 희망하는 예술가도 줄을 섰다. 주정이(판화가)·최영철(시인)·최은희(경성대 무용학과 교수) ·김정명(부산대 미술학과 교수)·신일수(한양대 연극영화과 명예교수)·정진수(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교수) 등이다. 책을 기증하겠다는 예술인도 많다.

이윤택씨는 “도요 예술공동체 마을의 진로를 모색할 국제 워크숍을 다음달 밀양 연극촌에서 연다”고 밝혔다. 일본 시즈오카 무대 예술촌, 프랑스 태양극단 공동체, 인도 남부 랠리 연극촌, 경기도 양주의 미추산방 등 국내외 예술공동체 관계자들이 모일 예정이다.

이씨는 도요 예술공동체에 전념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 중이다. 10년 동안 일궈 온 밀양 연극촌도 밀양시에 모두 넘겼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강의도 이번 학기를 끝으로 그만둔다. 그는 “공동체가 자리를 잡아가면 가을에는 마을 앞 낙동강 둔치에서 특산물인 감자·고구마와 예술을 접목한 축제를 열어 주민들의 소득증대에도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했다.

이윤택씨는 최근 도요출판사를 등록해 첫 출판물로 판화가 주정이씨의 『적막』을 펴냈다. 두 번째 서적으로는 이 감독 자신의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분야 예술인이 한곳에 모여 뿜어내는 문화의 힘이 죽어가는 농촌을 되살리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세월을 거슬러 더 젊어지는 게릴라 이윤택의 꿈이다.

  김해=김상진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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