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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세 줄로 바이올린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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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러 해 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이 뉴욕 링컨 센터의 애버리 피셔 홀에서 초청 연주회를 했을 때의 일이다. 펄먼의 연주회를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무대에 서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펄먼은 어린 시절 심한 소아마비에 걸렸기 때문에 양쪽 다리에 보조 장치를 하고서도 두개의 목발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가 목발을 짚고서 무대 위를 아주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걸어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일 자체가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는 매우 힘겹게, 하지만 기품을 잃지 않은 채 무대 중앙의 의자가 놓인 곳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 앉아 목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다리의 보조 장치를 푼 뒤 한쪽 다리를 뒤로 잡아당기고 다른 쪽 다리를 앞으로 뻗어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런 다음 앞에 놓인 바이올린을 들어 턱에 받치고는 지휘자를 향해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서 펄먼이 천천히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나와 연주 준비를 마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불과 두세 소절밖에 진행되지 않았을 때 바이올린의 현 하나가 끊어진 것이다. 마치 총을 쏜 것처럼 탕! 하는 소리가 연주회장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알았다. 그리고 이제 펄먼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두가 알았다. 그날 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제 펄먼이 보조대를 다리에 묶은 뒤 목발을 집어들고서 밖으로 걸어나갈 것이라고. 그러고서는 다른 바이올린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줄을 갈아 끼워 다시 힘겹게 무대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이날 펄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다가 지휘자에게 다시 연주를 시작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의 의지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재개되고, 펄먼은 중단됐던 부분에서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계속했다. 현 하나가 끊어진 채로, 그는 청중이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뜨거운 열정과 힘과 순수성으로 넘쳐나는 새로운 곡을 연주해 나갔다.

물론 세 줄의 바이올린을 갖고서 교향곡을 연주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츠하크 펄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네 줄짜리 바이올린을 갖고 연주해 왔는데, 갑자기 연주회 중간에 현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연주를 중단하고 무대를 내려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아 있는 세 줄만으로 곡을 연주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매순간 편곡을 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재작곡을 해나가 마침내 전에 들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음들을 창조해냈다.

그가 연주를 마치자 연주회장은 경이에 찬 침묵에 압도당했다. 이윽고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가 이뤄낸 놀라운 연주에 대해 지휘자를 포함한 모두가 진정 어린 찬사를 보냈다. 미소를 지으며 이마의 땀을 닦은 뒤 펄먼은 활을 들어 청중을 조용히 시키고 나서 침착하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하지만 전혀 거만하지 않은 자세로 말했다.

"때로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들을 갖고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가 하는 일입니다."

이 말을 마친 펄먼은 다리 보조대를 묶은 뒤 목발을 짚고서 열광적인 박수 갈채 속에 무대를 떠났다. 이 감동적인 사건은 그해 휴스턴 크로니클지에 실려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음악에서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삶의 예술인지도 모른다. 예술가든, 평범한 개인이든 인간 모두가 그렇다. 이 점에서는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도 예외일 수 없다. 많은 것을 잃었다고 불평하거나 남에게 원인을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갖고 열정을 다해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예술이다. 그럴 때 그 음악은 더 아름답고, 더 신성하고, 더 감동적이다. 그래서 삶은 더욱 놀랍다.

류시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