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부분과 전체…기술발전과 윤리의 상반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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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논술 준비가 어렵지 않은 수험생은 없다. 그러나 자연계를 지원하는 수험생이 인문계를 준비하는 수험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인문계, 자연계 구별없이 같은 논제가 출제될 경우 당연히 자연계를 지원한 학생이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자연과학을 전공할 학생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원칙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수험생들로서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주요 사립대학에서는 자연계 논술문제를 따로 출제하기 때문에 이 대학에 지원하는 수험생들은 나름대로 별도의 준비를 해야한다.

자연계를 지원하는 수험생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라는 고전이다. 이 책은 20대 나이에 양자역학과 '불확정성의 원리' 를 내놓아 30세인 1932년 노벨물리학상을 탄 하이젠베르크가 물리학도로서 고민했던 주요한 주제를 놓고 동료들과 나눴던 대화기록이다.

20여개의 주제별로 대화체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과학도가 부딪힐 수 있는 이론적 쟁점은 물론 정치적.윤리적.철학적 주제 등 광범위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과학도는 물론 인문계를 지원한 학생에게도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훌륭한 고전이다.

책의 제목이 '부분과 전체' 인 것도 이런 내용과 무관치 않다. 인류 전체라는 맥락을 잊은 채 나치즘에 탐닉한 당시 청년들과 지식인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으며 과학자가 자신이 연구한 결과도 사회와 인류 전체와의 관련성 속에서 검토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워낙 다양하고 광범위한 주제가 포함돼 있어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물리학 이론을 다룬 주제보다 과학자로서의 고뇌를 담은 철학적.윤리적 주제들이 출제에 적합하다.

과학자로서 종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실증주의와 종교가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를 다룬 부분, 독일의 원자폭탄 제작을 반대하면서 과학자가 연구결과가 미친 파국적 결과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 정치적 억압에 대해 과학은 어떻게 대결해야 하는가를 다룬 내용등이 그것이다.

또 지성인으로서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역사에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가를 다룬 대목과, 청년 지식인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언어.혁명에 대한 견해와 정치적 파국에서 개인의 행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룬 부분도 자연계.인문계 구분없이 출제됨직한 주제들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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