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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행복하냐’고 묻는 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7호 35면

행복(幸福)이란 단어는 일견 예스럽다. 국어사전을 보면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정의돼 있다. 풀어 쓰면 더없이 좋은 의미다.

그런데 왠지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젊은이가 적잖다. ‘행’이란 글자도, ‘복’이란 글자도 1960~70년대의 후덕한 이미지는 갖고 있을지 몰라도 요즘 신세대가 쓰는 ‘간지’ 나는 용어와는 영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란다.

그런 젊은이들도 서로 안부를 물을 때면 “요즘 행복하냐”고 인사를 건넨다. 행복하냐고? 매우 낯선 질문에 낯간지러운 인사말이다. “잘 지내지?” 정도면 모를까, 나이 사십 넘은 중년들끼리 주고받기엔 영 어색하다.

우리 선조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문안 인사를 올렸다. 못 먹던 시절, 밤새 뜻하지 않은 변고가 많던 시절의 자연스러운 확인 의례였을 거다. 이에 비하면 먹고사는 단계를 넘어선 지금은 보다 비물질적인 영역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셈이다.

하지만 행복을 묻는 인사가 일상화된다는 건 그만큼 행복이 우리 가까이에 있지 않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오히려 먹고살기 힘들 때가 더 행복하고 살 만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힘들었지만 순수했고, 행복에 이르는 수단은 많지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가까이서 행복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실린 ‘우리 시대의 역설’이란 시는 그래서 우리 마음에 절실히 와 닿는지도 모른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낮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다.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네티즌은 이 시에 자신의 체험담을 한 줄 두 줄 덧붙여 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공감대의 확인이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위가 쓰려 먹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며, 매일 밤 집으로 가는 길이 영 가볍지 않은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안도감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 중국 송(宋)나라 때의 수신서인 『경행록(景行錄)』에 ‘旣取非常樂 須防不測憂(기취비상락 수방불측우)’란 말이 있다. ‘이미 큰 즐거움을 얻었거든 모름지기 앞으로 닥칠 우환에 대비하라’는 경구다. 맞는 말이지만 거꾸로 안 좋은 일이 잇따르다 보면 조만간 즐거운 일이 생길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 또한 세상 이치다.

대한민국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원망·불신·아집과 이기주의로 가득 차 있지만 국민에게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줄 날이 언젠간 오지 않겠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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