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청, '한반도 유사시 미국·일본인 구출계획'…위헌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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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93년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 이후 조성된 한반도 위기상황때 일본 자위대가 수송기 28대, 수송함 6척을 동원해 한국 거주 일본인과 미국인을 4일만에 구출하는 계획을 마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도쿄 (東京) 신문이 26일 일본 방위청 관계자의 증언과 내부문서를 토대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방위청은 그해 6월 한반도에서 비상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극비리에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1만명과 미국인 1백20명을 자위대 장비로 수송하는 구출계획을 마련했다.

방위청은 당시 유엔 안보리가 대북 경제제재를 결의하는 '긴급시' 와 북한이 남침하는 '분쟁 개시후' 로 나눠 서울.인천.부산과 규슈 (九州) 지역 군사기지를 수송 루트로 하는 구출계획을 작성했다.

구출 계획에 따르면 '긴급시' 보잉747, C - 130 수송기, CH - 47 헬리콥터 등 항공기 28대 외에 수송함.수송정 6척을 이용, 일본인 전원을 본국으로 수송토록 돼 있다. 특히 '분쟁 개시후' 에는 호위함.전투기에 의한 호위 외에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을 위한 무기사용도 상정하고 있다.

방위청의 한국 거주 일본인 구출계획은 93년의 한반도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방위청이 당시의 구출계획에 미군 지원 및 주요 시설경비 등을 포함시켜 'K반도사태 대처계획' 이라는 일종의 작전계획을 마련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 정부가 새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 (가이드라인)' 에 따라 자위대법 개정작업을 벌이면서 당시의 구출계획을 원용한 흔적이 짙은 점도 음미해볼 대목이다.

최근 여당에 제출된 자위대법 개정안은 외국 거주 일본인 구출때 수송기 외에 함정 및 헬리콥터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남침을 전제로 한 '분쟁 개시후' 의 무기사용에 관한 내용은 당시로선 초법적인 조치였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일 연립여당은 외국 거주 일본인 구출시 무기사용을 허용하는 자위대법 개정안을 심의중인데 이번에 그 배경이 상세히 밝혀진 만큼 위헌을 지적하는 사민당의 반발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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