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가 안보 없이 인간 존엄·가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법원이 어제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6월의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심리를 서둘러 이 사건 결론을 내린 것은 잘한 일이다. 지난 5월 서울남부지법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후 동일한 사건을 놓고 법원과 법관에 따라 유.무죄 선고가 엇갈리고 구속영장도 발부.기각으로 혼선을 빚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양심 및 종교의 자유도 무한정한 것이 아니라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임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헌법상 기본권의 행사가 국가공동체 내에서 타인과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다른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모든 기본권 행사의 원칙적인 한계"라고 밝힌 부분이 그것이다. 물론 양심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중한 가치다. 그렇다고 그것이 공동체 유지를 위한 국방의 의무에 우선할 수는 없다.

대법원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강조한 부분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국가의 안전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될 수 없으므로 병역 의무는 궁극적으로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이 분단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 상황을 감안할 때 양심의 자유를 내세워 어떤 젊은이도 나라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사건 판결로 병역 거부자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양심.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한 입영 거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엄격한 기준을 정해 대체복무의 도입을 검토하는 등 근원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반대.보충 의견을 낸 대법관들이 대체복무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도 위헌심판이 제청된 사건에 대한 결정을 조속히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