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지친 이세돌 “1년 반 휴직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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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한국기원의 징계 움직임에 이세돌 9단이 ‘1년 반 휴직’을 선언하면서 양측의 대립각은 더욱 첨예해졌다. 이 9단은 이번 주나 다음 주 중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낼 예정인데 실제 휴직에 들어가는 시기는 유동적이다. 이 9단의 친형 이상훈 7단은 “(동생의)결심이 확고하다. 기사총회 소식에 많이 상심했는데 휴직을 결정한 뒤부터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모습이다”고 말한다. 한국기원 프로기사회는 지난달 26일 한국리그 불참, 시상식 불참, 행정 협조 거부 등 돌출 행동을 해 온 이세돌 9단에 대한 징계안을 표결에 부쳐 86대 37로 통과시켰고 이사회의 결정을 남겨둔 상태다.<본지 5월 30일자 35면>

이 9단은 현재 한국기원 한상열 사무총장의 면담 요청이나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형 상훈씨는 “심신이 피곤한 상태에서 승부 자체를 힘들어 했다. 승부만 생각하고 살던 기사가 대충 두고 던질 수는 없고… 그래서 휴직을 생각하게 됐다. 나 역시 동생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한다. 코앞에 닥친 국제대회인 후지쓰배(6일)와 TV아시아선수권(9~12일)은 참가한다. 6일 후지쓰배 8강전에서 승리하면 7월4~6일의 준결승과 결승에도 참가해야 하니까 실제 휴직은 7월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이 현재 상위권에 올라가 있는 대회는 이외에도 많다. 국수전은 타이틀 보유자로서 도전기를 앞두고 있고 명인전, GS칼텍스배, 물가정보배 등은 본선리그가 진행 중이거나 곧 시작될 예정이다.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도 32강에 들어 있고 KBS바둑왕전도 승자 3회전에 올라 있다. 형 상훈씨는 “이들 대회 주최 측이나 스폰서 측에 사과 서한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 역시 누구의 잘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형으로서 동생에게 좀 더 이른 시일 내에 복귀하도록 계속 설득할 생각이다.”

중국리그도 문제다. 이세돌 9단이 속해 있는 중국리그 구이저우 팀의 장쿠이 감독은 “16연승을 거두고 있는 이세돌은 우리 팀의 훌륭한 주장이다. 그는 중국리그에 계속 출전할 것이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이 중국리그에 참가하면서 한국리그에 불참한 것이 징계 문제를 촉발시킨 마지막 사건임을 생각할 때 휴직 후 중국리그 출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한국기원은 7월 2일 이사회를 열어 기사회의 징계안 표결 결과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문제는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인터넷 바둑사이트에선 연일 이 문제로 격론이 벌어지고 있고 정확하지 않은 풍문과 오해도 난무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의 최대 적수인 구리 9단의 소감도 매스컴을 타고 있다. 그는 “이 9단이 (휴직을)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견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이세돌은 천재지만 나는 아니다. 이세돌이 잠시 쉰다고 내 천하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마샤오춘 9단은 “이세돌이나 한국기원 모두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고 했는데 이 말이 정곡을 찌른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 9단의 강수에 뒤통수를 한 방 맞은 한국기원은 “휴직과 징계는 별개 사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퇴유곡에 빠졌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한국기원엔 20개월 연속 한국 랭킹 1위를 지켜온 이세돌 9단 외에도 그의 징계안에 총대를 멘 ‘황제’ 조훈현 9단이 있고 사태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이창호 9단도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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