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뼈아픈 후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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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큰어머니는 몸이 깡말랐었다. 그러나 인자하셨다. 남보다 먼저 남의 걱정을 하던 분이셨다. 우리 집에 쌀독이 비면 몰래 쌀독의 바닥을 채워주셨다고 어머니는 큰어머니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다. 눈보라가 불고 밖이 추운 날이면 우리 집 방으로 들어서며 맨 처음 맨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어보시곤 했다. 춥고 가난하던 때에 큰어머니는 바람벽이었고 지붕이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큰어머니의 상여를 뒤따라가며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외할머니도, 큰어머니도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다. 두 분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물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단출해지는 기억의 나라에 살아계실 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피안(彼岸)으로 떠나보냈다. 사실 나는 비보(悲報)의 내용이 대통령의 결단이라고는 좀체 믿어지지 않았다. 봉하마을로 귀향해 “야, 기분 좋다”라고 말하던 모습과 털썩 주저앉아 밀짚모자를 벗고 막걸리 한 잔을 마시던 소탈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냥 평범한 촌부로 보였다. 자전거 타고 농로를 달리던 모습은 늙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털털하게 보통으로 사는 게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며 사람을 마지막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았다고 했다. 초록이 짙어가는 이른 아침, 새들이 막 깨어나 울고 있는 숲길을 걸어 올라가며 홀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헤아려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온전히 사람을 이해한다고 믿었다한들, 사랑이라 믿었다한들 그것은 나를 위한 이해요, 나를 위한 헌신이요, 나를 위한 희생이요, 나를 위한 자기 부정이 아니었는지를. 황지우 시인이 시 ‘뼈아픈 후회’에서 “슬프다 //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 모두 폐허다// (…)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 젊은 시절,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노래했듯이.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일시에 완성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기억에 대한 완성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마치 내게 외할머니와 큰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만큼씩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대해 질문하고, 또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