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급차 90%가 쓰는 ‘메이드 인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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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SK에너지는 지난해 엑손모빌 등 미국 기업에 고급 윤활기유인 ‘유베이스’를 226만 배럴 수출해 3억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에쓰오일도 미국에 고급 윤활기유인 ‘울트라 에쓰’를 2억 달러어치(약 127만 배럴)나 팔았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그룹 3’으로 구분되는 고급 윤활기유(연간 약 390만 배럴)의 90% 정도가 두 회사 제품이다.

자동차 운행에 반드시 필요한 국내산 석유제품이 미국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고가의 엔진오일이나 자동변속기오일 등 윤활유의 원료가 되는 고급 윤활기유가 주인공이다.


고급 윤활기유를 이용해 만든 윤활유는 불순물이 적어 자동차 배기시스템의 수명을 연장하고 연비를 개선하는 데 효율적이다. 고급 윤활기유가 신차와 고급 차종에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쓰오일의 제품은 포드가 제조하는 신차의 엔진오일과 변속기오일 원료로 쓰이고 있다.

국내 기업이 미국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SK에너지는 1995년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그룹 3’의 고급 윤활기유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제조 공정 기술(UCO기술)을 독자 개발해 22개국에서 특허를 땄다. 당시 미국 정유업체는 ‘그룹 1·2’에 해당하는 일반 윤활기유만 생산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석유가 풍부해 자동차의 연비 향상에 관심이 적었기 때문에 미국 정유업체는 고급 윤활기유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SK에너지는 엑손모빌 등 미국 기업을 찾아다니며 브리핑한 끝에 그해 수출할 수 있었다.

에쓰오일은 2003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2002년부터 그룹 3 윤활기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 회사도 미국 시장을 목표로 정했다.

이 회사 윤활기유 해외영업팀의 강기태(45) 부장은 “자동차의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 성능이 입증된다면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도 저절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자동차 연비 개선과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고급 윤활기유 시장이 연 20% 정도씩 성장하는 데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고급 윤활기유는 국내 정유사에 높은 수익률을 안겨준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윤활기유 사업으로 327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 중 52% 정도가 고급 윤활기유 판매에서 나왔다. 윤활기유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19.1%로 5.1%에 불과한 정유부문보다 월등했다.

대한석유협회 홍보팀의 주정빈 부장은 “매출액에 있어서는 정유 부문의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영업이익률은 정유 부문보다 네 배 정도 높은 고부가가치 사업 분야”라고 말했다. 현재 SK에너지는 세계 그룹 3 윤활기유 시장의 50%, 에쓰오일은 25%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문병주 기자

◆윤활기유(Base Oil)=각종 윤활유의 원료가 되며 원유를 정제해 나오는 제품은 그룹 1∼3으로 구분된다. 윤활기유 약 85∼95%에 각각의 용도(자동차용·선박용·기계용 등)에 따라 첨가제를 넣으면 엔진오일 등 다양한 윤활유가 된다. 그룹 3 제품이 불순물이 가장 적고 친환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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