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늪-포산일기 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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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석(1948~ ) '늪-포산일기 6' 부분

생각의 수면도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둡다
밑바닥에는 우렁이 기어간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어구를 챙기며 어부가 물속을
들여다보면
수면을 거대한 잎들로 덮고도 사려 깊게 내다보는
늪의 푸른 눈

제 안의 꽃을 내헤쳐 보이고 싶은 늪은
어부 앞에서 망설인다
가시연마저 온몸의 가시로
제 몸을 찢고
수줍음을 불빛처럼 켜낸다
제 안에 있는 힘이 끊임없이
밑바닥을 차고 올라와서 펴는 생의
說明(설명)이 왜 저러할까
(후략)



늪은 고여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진흙 위에 우렁이들이 남긴 곡선의 길과 녹처럼 번져가는 풀, 빗방울이라도 지나가면 그 길들이 후두둑 깨어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닥을 차고 가시연꽃이 올라올 때, 그것이 오래 보여주고 싶었던 늪의 내면이라는 것을 그대는 아는지. 온몸이 가시로 된, 제 잎을 찢으며 피어오른 한 생(生)의 이야기를 그대는 듣고 있는지.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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