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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화유산 답사기]17.룡곡리 고인돌 무덤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평양 인근 고인돌' 답사의 두번째 대상은 상원군 룡곡리의 고인돌 무덤떼였다.리정남 선생이 이곳으로 우리를 안내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듯했다.첫째는 검은모루 유적에서 가깝고, 둘째는 내가 꼭 보고 싶다는 별자리무늬 고인돌이 바로 옆마을 귀일리에 있었다.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를 리선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룡곡리의 20여기 되는 고인돌중 제4호 무덤에선 사람뼈가 나왔습니다. 절대연대 측정값은 4, 539±167년입니다.그리고 바로 옆 제5호 무덤에선 청동비파형 창끝이 출토됐습니다."

북한의 고고학은 이처럼 엄청스러운 데가 있다."남한에선 청동기시대를 기원전 10세기 이상으로 올려보지 않는데요. " "우리도 얼마 전까지는 기원전 12세기 정도로 보았죠. 그러나 단군릉이 조사되면서 이제는 기원전 30세기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리선생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내 전공도 아닌 분야에 섣불리 대들 일도 아니었고 설혹 이견이 있더라도 내가 지금 그 논쟁을 하러 온 것도 아니었다.그러나 고인돌의 연대에 대한 남북 고고학자들의 견해차는 너무도 컸다.학문적 교류가 없는 만큼 그 간격이 넓고 깊어 보인다.

룡곡리 들판은 참으로 인상적인 시골 풍경을 보여주었다.창밖으로는 낮은 구릉이 잔잔하게 깔려 있는데 이상하게도 찻길은 산자락을 피해 돌아갈 뿐 언덕비탈을 오르는 일 없이 평지를 가듯 달린다.마치 넓은 평야에 듬성듬성 동산이 배치된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남한 땅에서도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는 전형적인 낮은 구릉지대였다.내 개인적 인상으로는 경남 합천이나 전남 고흥의 고인돌을 답사할 때 보았던 풍광과 흡사했다.개울을 따라 달리던 차가 안쪽 마을로 인도하는 다리 앞에서 멈추었다.

약간 비탈이 진 듯했지만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들판이 점점 넓어 보이게 됐을 때 검은 흙이 유난히 기름져 보이는 넓은 밭에는 볕에 말리기 위해 얼기설기 세워놓은 옥수수대 묶음 수십개가 줄지어 있었다.그 정경이 너무도 평화롭고 풍요로워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있는데 리선생이 내게로 다가와 사과하듯 말했다.

"교수선생,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어제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농부들이 건조시키던 옥수수대를 모두 고인돌 위에 올려놓았지 뭡니까. 지금 저기 보이는 옥수수대 묶음들이 모두 고인돌 위에 있는 것입니다.여기 좀 기다리십시오. 인차 (곧) 사람들을 불러 모두 내려놓게 하겠습니다."

순간 나는 리선생의 팔뚝을 잡고 만류하면서 그들이 민망하지 않게 평양말씨를 흉내내며 말했다. "일 없습니다. 고인돌이라는 것이 넓적한 바위덩어리이니 옥수수대를 내려놓지 않아도 다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고인돌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였지 하나 하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조상님들 덕에 농부들은 옥수수대를 잘 말리게 됐고, 우리는 고인돌 덕에 이 룡곡리 산골까지 들어와 보게 됐으니 모두 문화유산의 공 아니겠습니까. " 나는 리선생이고 농부 아저씨고 난처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얼른 촬영을 마치고 귀일리 고인돌로 향했다.

룡곡리에서 귀일리로 가는 길가 중간 중간에도 고인돌이 몇개 보였다.어느 고인돌은 키 작은 향나무로 둘러 있었고 어느 고인돌은 키 큰 측백나무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철난간을 두른 남쪽의 고인돌과 비교한다면 쇠줄에 묶인 도시 강아지와 들판을 뛰노는 시골 강아지의 차이만큼 돼 보였다.

귀일리 고인돌은 오덕형으로 받침대가 낮은 편이나 덮개들은 상당히 컸다.덮개들 위에는 별자리무늬라는 구멍이 곳곳에 파여 있었다.그러나 내 눈에는 아무리 보아도 별자리로 읽혀지지 않았다.오히려 전라북도 남원과 순창에서도 본 바 있는 성혈 (性穴) 같았다.여자의 성기 모양으로 구멍을 파면서 다산 (多産) 과 풍요를 기원했던 샤먼의 전통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이것을 별자리로 단정하고 있다.

1996년에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가 공동으로 펴낸 '조선기술발전사 제1권 - 원시.고대편' 에는 이 별자리무늬에 대한 정밀분석도 실려있다. 이 보고에 의하면 북극성을 중심으로 해 북두칠성.카시오페이아.헤라클레스.케페우스 등 여러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데 각 별의 알파 (α) 별과 감마 (γ) 별의 방향을 계산해 보니 4천9백년전의 별의 위치라는 것이다.이게 사실이라면 새긴 사람들의 과학도 놀랍지만 그걸 풀어낸 사람들의 실력도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귀일리 고인돌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얼마간 있다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할 때는 "그 고인돌 한번 아주 듬직하게 잘 생겼다" 고 큰소리로 칭찬했다.

숙소로 향하는 우리의 차가 다시 룡곡리 마을 앞을 지날 때 저 안쪽 산비탈엔 옥수수대가 얹혀 있는 고인돌 무덤떼가 장관으로 펼쳐졌다.

리선생은 내년엔 여기에 고인돌공원이 생기니 요다음에 다시 오자며 아쉬움을 달래면서 내게 은근히 묻는 것이 있었다. "교수선생 답사기를 보니까 지석묘군 (支石墓群) 을 고인돌 떼무덤이라고 했던데 그게 남한의 새로운 학술용어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고창군 상갑리에 있는 5백기의 고인돌 무덤떼를 쓰면서 그 장대한 모습에 걸맞은 묘사를 궁리하던 중 마침 아침신문에서 '떼강도가 극성을 부린다' 는 기사를 보고 무덤떼를 떼무덤이라 바꿔 쓴 겁니다." 그 바람에 우리의 차 안은 웃음바다가 됐고 그 웃음소리에 남북한의 고인돌 견해차 같은 어색함은 룡곡리 들판 속에 다 사라져 버렸다.

유홍준= 〈영남대교수.박물관장〉 사진=김형수〈통일문화연구소 차장〉

※다음회는 '주영헌 선생과의 대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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