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명지고 문방구 이기찬씨,폐지모아 26년째 장학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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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7일 오후5시10분쯤 서대문구남가좌동 명지고등학교 뒤 공터. 잔뜩 쌓인 종이상자와 신문지를 분류하고 빈 우유곽을 씻어 말리는 이기찬 (李起贊.65.서대문구남가좌2동) 씨의 손길이 바쁘다.학생들 사이에 '폐지 모으는 문방구 할아버지' 로 널리 알려진 李씨는 명지고등학교 한편에서 4평짜리 문방구를 운영하면서 동네를 돌며 틈틈이 폐지를 모은 돈으로 지난 72년부터 해마다 학생 10여명에게 2백여만원의 장학금을 주고 있다.

26년간 李씨의 '폐지장학금' 혜택을 받은 중.고등학생들은 모두 1백68명. 액수로는 6천여만원에 이른다.충남서천군기산면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운 집안형편 탓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李씨는 26세부터 이종사촌인 명지고등학교 설립자 유상근 (兪尙根) 씨의 도움으로 학교 사환 일을 해왔다.

그러다 학교측 배려로 72년부터 문방구를 내게되자 '못배운 한도 풀고 버려지는 자원도 아껴보자' 는 생각에서 폐지수집에 나섰다.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매일 80~1백㎏의 목표량을 달성하다 보면 하루가 후딱 간다.

지난 95년 고향에 벌초하러 갔다가 벌초기계에 인대만 남기고 한쪽 다리를 거의 잘리는 사고를 당해 4급 장애인이 됐지만 폐지수집은 멈추지 않았다."폐지를 모아 장학금을 준다는 사실이 동네에 알려지자 자동차 트렁크에 폐지를 모아 실어다 주는 이웃, 전화로 '우리집에 많이 쌓여있으니 가지고 가라' 고 연락주는 이웃등 고마운 분들이 많다" 고 李씨는 말한다.

95년 서울대학 병원에 안구기증을 약속하기도 한 李씨는 "앞으로 힘이 다할 때까지 폐지수집을 계속하겠다" 고 다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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