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투시 안경’ e-메일 봤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직장인 안석현(28)씨는 얼마 전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투시 안경 판매합니다’는 제목의 광고 메일이었다. 메일을 열어 보니 ‘불만족 시 100% 환불 보장’이란 문구가 큼지막하게 씌어 있었다. 그 아래엔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둥그런 안경테 안에는 행인들의 나체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사진을 조작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안씨는 호기심에 사진을 클릭했다. 그러자 곧바로 판매 사이트로 연결됐다. 사이트에는 제품 사진부터 주문 내용을 입력하는 창까지 있었다. 안씨는 “주변에서도 비슷한 메일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영화에서처럼 쓰기만 하면 나체가 들여다보이는 안경이 과연 존재할까. 최근 인터넷을 통해 투시가 가능하다는 안경이 판매되면서 사실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단 투시 안경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면 제품 사진과 가격이 나와 있다. 특수약품을 계속 발라서 사용해야 하는 안경이 39만원,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경(사진)이 69만원으로 제시돼 있다.

홈페이지 하단에는 주문창이 있는데, 제품 종류와 주소 등을 입력하면 상담 전화번호가 뜬다.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계좌번호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줄 테니 돈을 입금하라. 일주일 내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기자가 “기술적으로 투시 안경이 가능하느냐”고 묻자 그는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대만에서 제작된 특수 안경”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면 종류 재질의 옷에는 투시율이 약하지만 다른 재질은 속살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투시 안경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적외선 장치 등 특수장비를 갖추지 않은 일반 안경으로는 투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개발된 적외선 투시 카메라 역시 흐릿하게 윤곽만 촬영할 수 있는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광학 전공의 한 대학교수는 “투시 안경은 황당한 이야기다. 더구나 일반 안경에 약물을 발라 투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사이트는 외국에 서버를 둔 것으로 통신 판매 등록이 돼 있지 않은 불법 사이트”라며 “관음증을 겨냥한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사이트를 통해 이른바 ‘투시 안경’을 구입했는지 등을 파악한 뒤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장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