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재계대표 대화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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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경제 6단체장은 20일 오찬간담회를 통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약 2시간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 金대통령은 대기업의 강도높은 개혁과 대량해고 회피 노력을 당부했다.

재계에선 계열기업 매각 등의 구조조정에는 비밀이 요구된다며 이런 애로를 이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상호 이해와 인식의 지평을 넓힌 모임" 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대화록.

^金대통령 = 경제가 어려워 국민의 고통이 많다.이런 때일수록 서로 힘을 합해 난국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최근 한 TV 토론광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재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강하다고 느꼈다. 정부와 재계는 이미 5개항에 합의했다.기업들이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과 언론은 그 속도가 완만하고 가시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노동자들은 실업자가 1백50만명에 달하는데 노사정 (勞使政) 합의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불만이다.파업 운운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심각한 사태가 오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정부와 기업은 한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가고 있는 상황이다.

파도를 넘어 안전한 항구로 들어가야 국민의 생명과 재산, 미래의 희망을 지킬 수 있다.

첫째, 30대 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해선 중요한 대기업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그래야 기업은 국민으로부터는 존경을, 노동자로부터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5월10일 TV를 통한 국민과의 대화를 예정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 협조를 바란다.

둘째, 고용문제다.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을 설득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도록 했다.그러나 우리에겐 사회보장제도가 유럽이나 다 선진국처럼 잘 안돼 있다.꼭 불가피한 정리해고는 정부.국민도 이해할 것이지만 최대한 해고 회피 노력을 해달라.

셋째,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협력이 부족하다.

어음은 법적으로 60일짜리를 끊어줘야 하지만 심한 곳은 6개월짜리를 주고 있다.기술이전도 불충분하다.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공영하는 체제가 가장 중요한 개혁이다.

넷째, 중소기협중앙회장에게 부탁한다.은행창구에서 중소기업 지원이 잘 안되고 있다는데 은행에만 맡길 게 아니라 중앙회에서도 은행에 나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정부에 요구하라.

다섯째, 외자 유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세계가 우리나라에 투자의 눈을 돌릴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섯째, 기회가 왔을 때 수출을 증대해 경제를 살려야 한다.

일곱째, 물가안정이다.특히 신선식품 가격이 안정돼야 한다.

농협 등에서 직판노력을 잘하는 곳도 있지만 아직은 형식적인 곳도 많다.

^김우중 (金宇中) 차기 전경련회장 = 재계 구조조정의 성과가 하반기에는 가시화할 것이다.

국민과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빨리 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현재 외국 투자가들이 한국에 많이 와 있고 실사가 진행중인 기업도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공개적으로 할 수 없고,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사회안정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므로 실업을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공장을 가동해야 하고, 공장가동을 위해선 수출을 할 수밖에 없다.대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어렵더라도 중소기업은 적극 도와줘야 한다.

통화가 증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출지원을 해야 한다.

^이규성 (李揆成) 재정경제부장관 = 수출금융과 관련한 애로를 잘 안다.하지만 너무 수출쪽만 지원할 경우 다른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창성 (金昌星) 경영자총연합회장 = 기업들도 정리해고는 최후순간에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최소한의 해고는 안할 수 없다.정부도 노조를 이해.설득시키는 데 노력해 달라. 대한중석사태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지도해주기 바란다.

^金대통령 = 그 문제점은 잘 안다.정부도 (노사) 어느 한편의 말만 듣지 않고 공정하고도 책임있게 잘 처리하겠다.

^최종현 (崔鍾賢) 전경련회장 = 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시적이지 못하다는 대통령 말씀에 동의한다.그러나 재계로선 구조조정을 내놓고 할 수는 없다.

상대가 있고, 또 이쪽이 안되면 저쪽하고 해야 하므로 비밀이 필요하다.(성과는) 거래가 성사되면 나타난다.솔직히 기업도 요즘 무척 어렵다.

죽느냐, 사느냐다.

^金대통령 = 진지한 토론에 감사한다.30대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을 조금 더 가시화할 때 국민과 노동자의 불만이 없어질 것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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