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성장군 아들 판문점서 변사…부친이 원인규명 '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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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를 이어 군인이 되겠다고 육사를 졸업한 아이가 자살이라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합니다. " 예비역 중장인 아버지가 현역중위로 근무중 의문의 죽음을 한 아들의 사인 (死因) 규명을 위해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30사단장.1군단장을 거쳐 지난해 11월 3군 부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김척 (金拓.55.육사 21기) 씨. 그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맏아들 김훈 (金勳.25.육사 52기) 중위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지난 2월24일 오후3시쯤. 2시간여 전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군부대의 설명이었다.

부인 (54) 과 함께 사고현장으로 향하는 金장군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했다."왜 그랬을까. 하필이면 내가 군단장으로 있던 부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말 못할 고민이 있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金장군 부부를 맞은 군당국은 金중위의 사망현장 안내는커녕 시신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이 지역을 관할하는 미군당국의 조사 결과만을 알려줬다.

金중위가 숨진 곳은 북한군의 동태가 한눈에 들어오는 판문점내 벙커.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은 채 벙커벽에 기대앉아 숨져있었으며 옆에는 金중위의 권총이 떨어져 있었다는 것. 머리를 정조준한데다 반항한 흔적이 없는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자살이 확실하다는 설명이었다.그러나 金장군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96년 육사 졸업식장에서 '이제 꿈을 펼칠 때가 왔다' 며 기뻐하던 모습, 불과 2주 전 외박을 나와 '아버지의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며 잔치준비에 들떴던 아들. 36년 군생활의 경험에서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金장군은 먼저 아들이 소대장으로 있던 부대원들을 접촉, 사고 당일 아들과 부대원들의 행적 및 부대원간의 갈등여부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사고 직전 아들의 행적에 대한 측근 인물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등 미심쩍은 부분이 드러났다.또 아들이 부임하기 전 소대원간 구타사고로 9명이 처벌을 받고 보급품 분실사고로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점도 드러났다.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金장군은 곧바로 현역시절 교분이 있던 장군들에게 협조를 얻어 미군측이 갖고있던 사고현장의 사진과 수사기록을 열람, 몇 가지 의혹을 추가로 발견했다.즉 ^권총에 아들의 지문이 남지 않았고^오른손잡이인 아들의 왼손에서만 화약이 발견됐으며^발사지점보다 위쪽에 형성되는 탄착점이 金중위의 키보다 낮은 곳에서 발견된 점 등이다.

이에 따라 金장군은 지난달 중순이후 타살 가능성이 짙다며 미군당국과 국방부에 각종 의혹을 제시하고 재수사를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반응은 냉담했다.

金장군은 포기하지 않고 이달초 다시 장문의 탄원서를 국방부에 제출, 결국 미군당국의 재수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군측은 현재 재수사자료를 미국 애틀랜타의 군범죄수사연구소에 보내 검토중이며 이달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지난 두달간 마치 악몽을 꾼 느낌입니다.부디 진상이 밝혀져 아들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들의 임관식 사진을 꺼내보는 金장군의 눈이 젖어 있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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