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실업대란과 정부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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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하루 평균 1만1천명씩 증가하는 실업자 수가 이미 2월말에 1백24만명을 넘었고 4월말께는 2백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서울역 지하철 시멘트 바닥에서 새우잠으로 밤을 지새는 수백명 노숙자들의 지친 모습에서 실업문제가 이제 우리자신과 이웃들에게 현실로 다가왔으며 국가경제의 파탄이 죄없는 서민들을 절망과 좌절의 궁지로 몰고가는 산 증거를 보게 된다.

지난해 12월 이후 단 석달 동안에 부도업체들의 숫자가 1만개를 넘었으니 그 여파로 실업률이 15년만에 최고로 오른 것은 사필귀정이다.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까지의 실업률 증가가 주로 중소기업의 도산 때문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나라 5대 재벌을 위시한 대기업들과 그 방계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할 신종 실업자군의 양산이 예고된다는 점이다.

만약 정부나 노동조합들이 여기에서 대기업들의 정리해고를 인위적으로 막으려고 한다면 우리의 경제회복은 그만큼 더 늦어지고 국민과 근로자들의 희생만 결국 더 커질 것이다.실업률율을 효율적으로 최소화하자면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아래서 예상되는 심각한 경기하락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줄거리를 잡아야 한다.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 (GDP) 의 실질성장률을 최근 재정경제부장관은 마이너스 0.2~0.8%로 내다보았으며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마이너스 4%로 예측하고 있다.우리나라 GDP의 구성비율은 민간소비부문 54%, 민간투자부문 36%로 민간부문이 전체 GDP의 90%를 차지하고 정부공공부문은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부실대출과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압박으로 은행들은 신규여신을 꺼리고, 고금리와 고부채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부도방지와 구조조정에 급급해 지금 신규투자를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됐다.또 취업불안과 실업증가에 주눅이 든 민간부문의 소비도 큰 폭의 감소가 예상된다.

올해도 민간부문의 투자와 소비 감소를 각각 40%와 15%로 예측해 본다면 민간부문 경기침체로 인해 올해 우리나라 GDP 실질성장률은 10% 인플레를 감안할 때 마이너스 12.5%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95년 페소위기로 마이너스 6.1%의 GDP 하락을 기록했던 멕시코 대비 2배 이상의 경기하락을 의미하며 이처럼 급격한 GDP폭락은 우리나라 실업자수를 3백만 이상으로 폭증시켜 예측할 수 없는 정치.사회적 불안을 몰고 올 것이다.이러한 실업대란을 예방하자면 정부는 즉각 다음과 같은 조처를 취해야 한다.

첫째, IMF와 더 적극적으로 협의해 우리나라 금리를 대폭 내려 1천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로 허덕이는 우리 기업들의 숨통을 하루속히 터줘야 한다.하루 평균 1조5천억달러에 이르는 세계외환시장 거래량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환율이 1천3백원대에나 가야 금리인하를 고려해 보겠다는 IMF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외환시장을 통한 국제자본의 이동이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른 요즘 IMF를 위시한 어느 누구도 원화의 적정환율을 지금 책정하는 것은 무모하며 무의미하다 아니할 수 없다.

둘째, 재정적자의 대폭 증가를 감수하고라도 정부는 법인세.소득세.소비세 등을 과감히 인하해 빨리 국내 투자와 소비활동을 고양해야 한다.IMF는 올해 우리나라 재정적자를 GDP의 0.8%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으나 정부는 이를 4~5%까지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공공투자를 대폭 확장해 민간부문에서 발생하는 잉여 노동력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획기적인 수출증가와 수입억제로 무역수지를 대호전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고질적인 무역적자로 무역수지 부문이 매년 1~4% 정도의 GDP 감소요인으로 작용해 왔으나 올해는 5~10%정도의 GDP 증가요인이 될 수 있도록 무역수지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무역수지 흑자가 1백억달러씩 오를 때마다 우리나라 GDP는 약 3% 이상 증가할 수 있으므로 우리가 올해 무역흑자를 3백억달러만 달성한다면 그에 따른 외환위기 해소와 환율 및 이자율 저하 등으로 GDP하락을 10% 정도 반전시킬 수 있다.

박윤식<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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