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당적 넘나든 철새정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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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 며칠 사이 여권 내부는 숨가쁘게 돌아갔다.경기.인천 등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 후보로 누구를 낼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과 국무총리 서리까지 가세한 끝에 '경기지사 국민회의, 인천시장 자민련' 으로 가닥을 잡았다.이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게 임창열 (林昌烈) 전경제부총리와 최기선 (崔箕善) 인천시장이었다.두 사람을 어느 당 후보로 선거전에 내느냐는 게 논란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당적문제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판에 이들은 어쩐 일인지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갈등이 일단락된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지만 그나마 "내심 원하는 쪽은 있지만 (당이) 어디든 관계없다" (최기선시장) 는 게 고작이었다.

4.2재보선 직후인 3일 아침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崔시장이 당초 당적을 희망했던 쪽은 국민회의였다.그러던 그가 아무 이의 없이 순순히 자민련 당적을 수용한 것이다.

한술 더 떠 그는 "내가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것은 인천시민을 위한 일" 이라며 "아직 인천을 위해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 이라고 했다. 林전부총리도 마찬가지다.

국민회의에 입당한 그는 여권 내부 조율과정에서 자민련 당적을 가질 뻔했다.김종필 (金鍾泌) 총리서리의 반발로 무산돼 가까스로 그는 국민회의 당적을 유지하게 됐다.그러나 林부총리 역시 당적 선택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두 사람이 이번 논란 속에서 보여준 것은 당선을 위해선 당적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과연 여권후보면 됐지 국민회의든 자민련이든 정당 간판은 중요치 않다는 발언은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대선을 전후해 정당연합의 형태로 공동정권의 양축을 차지하곤 있지만 분명히 두 당의 노선은 차이가 많다.지금 정치권은 국민들에 의해 비판받고 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정치인들의 무원칙도 포함된다.자신의 당적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 만일 그들이 '나는 이런 이유로 이 당을 원한다' 고 주장했다면 오히려 조정작업은 쉬웠을 수도 있다.

철새정치인에 혈통이 있는 게 아니다.정치인으로서 가장 기본인 당적 선택권을 포기한 이들이 시절이 바뀌면 어느 순간 또 다른 당으로 옮길 수 있다는 관측은 과연 불필요한 것일까. 원칙이 살아있어야 정치권이 신뢰를 받는다.

박승희〈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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