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사회심리학]8.사물놀이 왜 인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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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올해로 사물놀이' 가 출범한지 20년을 맞는다.78년 1월 서울 원서동의 소극장 '공간사랑' 에서 김덕수 (金德洙.사진) 등 4명이 모여 '사물놀이' 라는 이름의 그룹으로 첫 공개연주회를 가진 게 그 효시다.

사물 (四物) 이란 꽹과리.장고.북.징 등 4종의 타악기를 가리키는 말. 농악, 즉 풍물에서 소고 (小鼓) 와 날나리 (太平簫) 를 뺀 나머지 악기로 구성됐다.풍물에서 사물로 '변신' 한 것은 투박한 야외음악에서 정교한 실내음악으로, 농촌마당에서 도시의 콘서트홀로 무대를 옮긴 민속악의 '예술화' 에 다름 아니다.

불과 20년 만에 신명의 리듬으로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사물놀이의 폭발적인 인기는 70년대말 '우리것' 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할 즈음 초심자라도 금방 친숙해질 수 있는 '유일한 전통음악' 이었기 때문. '국악은 느리고 지루한 것' 이라는 편견을 단숨에 깨 버렸다.

한편 숨막히도록 가슴을 죄는 군사정권도 사물놀이의 대중화에 '한몫' 했다.대학가와 일터의 시위현장을 휩쓸었던 사물놀이는 국민의 가슴 속에 사무친 응어리를 풀어냈던 '저항의 상징' 이었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무아지경에서 미친 듯이 두들겨 대는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차라리 움터 오는 해방의 기운이다.액 (厄) 과 사 (邪) 를 물리치고 희망을 불러오는 제의 (祭儀) 그 자체다.

살아있음을 몸으로 확인하는 신명의 순간이다.축제와 노동, 전쟁과 신앙이 한데 어우러진 리듬의 향연이다.

사물놀이에는 긴장과 이완, 맺고 풀고, 밀고 당기는 음양의 질서와 조화가 담겨 있다.꽹과리와 장고가 리듬을 잘게 쪼개어 원심력으로 작용한다면 징과 북은 리듬을 다지면서 음색을 감싸안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리듬악기.반주악기로 푸대접 받던 타악기가 선율악기의 차원으로 승화된 것이다.느리고, 조용하고, 반복적인 리듬에서 시작해 점점 클라이맥스로 줄달음치며 빨라지는 리듬은 성적 충동마저 유발시킨다.타악기는 인간의 육체와 가장 밀접한 악기. 청각은 물론 인간의 본능과 전율에 호소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뮤지컬.재즈.연극.팝아티스트와의 교류로 사물놀이의 장 (場) 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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