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영어강사 된 외국인 프로게이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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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3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PC방. 유니폼 차림의 외국인 청년 4명이 들어서더니 곧장 실내 한쪽에 마련된 10평 규모의 '게임 영어교실'로 향했다. 이들은 교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8명의 중.고교생에게 인사말을 건넨 뒤 컴퓨터 게임을 소재로 한 생활영어 강의에 들어갔다.

호주 출신의 피터(23)와 조엘(21), 그리고 미국 출신의 브라이언(21)과 댄(19). 이들은 모두 국내 프로게임단 헥사트론에 소속된 외국인 게이머들이다. 스타크래프트.워3 게임대회 등에서 수차례 입상한 실력자들이다. 특히 피터의 경우 지난달 SKY배 리그에서 국내 강자 임요환을 꺾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스타 플레이어다.

국내 13개 프로게임단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인 선수들을 기용하고 있는 헥사트론 게임단은 저변 확대와 자체 홍보를 위해 '게임 영어교실' 아이디어를 냈다. 이에 따라 소속 외국인 선수 15명은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한 20개 PC방을 돌며 주 1회 한시간씩 청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외국인 선수들도 이를 즐기는 눈치다.

"우리 팬들은 대부분 청소년이잖아요. 같이 대화하고 게임하면서 한국의 게임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더 멋진 경기를 보여줘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습니다."(조엘)

"학생들이 여기서 배우는 영어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말해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임과 관련한 내용이라서 그런가봐요.어쨌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습니다."(피터)

이들은 한결같이 '세계 최강의 프로게이머'를 꿈꾸며 지난해와 올해 사이 한국에 와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프로 게임리그가 있는 곳은 한국 뿐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휴학하고 왔습니다. 온라인게임에 관한 한 한국이 종주국입니다. 야구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가 꿈이듯, 게이머들에게는 한국의 게임리그에 참가하는 것이 꿈입니다. 4년 안에 최고 강자가 되겠습니다."(브라이언)

"일반 프로스포츠 구단처럼 좋은 성적을 내면 억대의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부진하면 방출됩니다. 중압감이 크죠. 하지만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댄)

하지윤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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