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를 천박하게 만드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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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과 그 보좌진영이 일하고 있는 청와대의 말과 행동은 나라의 정치나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일 수 있다. 그만큼 청와대의 이름으로 나오는 언어나 문건에는 나라의 상징다운 격과 품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 일부 비서진의 언행은 실망을 넘어 절망케 만든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여성 폄하적 패러디 사진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놓은 것이나 극언에 가까운 발표문을 내놓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선정적 영화장면을 패러디한 사진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려진 것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청와대 대변인이 "실무자가 '사진이 아닌 글을 보고 올렸다'고 해명했다"고 발표했는데, 글만 청와대 마음에 들면 사진은 어떤 것이든 괜찮다는 것인가. 이해찬 총리조차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추궁에 "수천만명의 네티즌 중 한 사람이 올린 내용으로 어떻게 홍보수석을 파면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한 네티즌이 사진을 올린 것 자체야 사소한 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청와대 홈페이지 담당자가 그 사진을 삭제하기는커녕 홈페이지 '열린마당'의 첫 화면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며칠 전에도 한 비서관이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에 일부 신문에 대해 '저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적이 있다. 비서관이 언론을 공격하는 것도 문제지만 증오와 미움에 찬 그 언어를 보면서 그 정서와 의식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으로 대립하더라도 지켜야 할 격과 예의는 있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저질언어와 문화까지 동원해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은 정치를 더욱 천박하게 만든다.

나라 전체의 수준을 바닥으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와대 비서진은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기를 당부한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을 유야무야 넘겨서는 안 된다. 책임질 사람에게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