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드라마 ‘밥줘’ 주인공 맡은 탤런트 하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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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밥을 벌어 밥을 먹는 일, 그게 인간사다. 밥이란 말엔, 그래서 어떤 거역하기 힘든 서글픔이 묻어 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에서도 꾸역꾸역 삼켜야만 하는 게 밥이다. 그러니 밥이란 벗으려야 벗을 수 없는 지독한 인간의 굴레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밥’을 앞세운 드라마가 있다. 제목이 독특해 눈길이 간다. 지난달 25일 첫 전파를 탄 MBC 일일드라마 ‘밥줘’(월~금 오후 8시15분 방송)다. 덮어놓고 밥을 달라니, 어떤 드라마인지 감을 잡기가 쉽진 않다. 서글픈 굴레로서의 밥을 한탄하는 내용일까, 밥벌이의 힘겨움을 토로하는 서민 드라마일까.

드라마 ‘밥줘’로 2년 만에 안방 무대에 돌아온 하희라씨는 “무심한 남편을 둔 아내의 감정을 상상하며 연기에 몰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MBC 제공]

◆‘밥줘’란 말의 쓸쓸함=주인공 조영란 역을 맡은 배우 하희라(40)씨를 만났다. 밥 때를 한참 넘긴 늦은 밤 경기도 일산 세트장에서였다. “‘밥줘’는 참 쓸쓸한 말이에요. 극중 남편이 집에서 유일하게 하는 말이죠. 주인공 영란의 입장에선 무심한 부부 관계를 상징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는 수 없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떠오르죠.”

그의 말처럼 ‘밥줘’는 살 만큼 살아본 탓에 ‘굴레’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부부애를 다룬 드라마다. 방송 5회분까지 다양한 부부의 모습이 빠른 속도로 그려졌다. 그는 극중에서 배우 김성민(36)씨와 애정 없는 삶을 견디는 부부로 출연한다. 연하 남자 배우와는 처음 호흡을 맞추는 터라 쑥스럽기도 했단다.

“상대 배우가 누나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했어요. 그래도 성민씨가 편하게 대해주니까 호흡이 점점 잘 맞아들어가죠. 오늘도 분장실에 ‘희라 누나 자리’라고 쓴 큰 종이를 올려 놓았더라고요. 하하.”

하지만 오누이같은 모습이야 촬영장 밖 이야기일 뿐이다. 극중 두 사람 사이엔 아찔한 갈등의 골이 있다. 남편이 옛 애인과 다시 사랑에 빠지면서 갈등은 폭풍처럼 번진다. 이 대목에서 불쑥 던지고 싶은 한 마디. 남편의 옛 애인이라니, 또 막장 드라마?

“남편과 옛 애인의 관계는 갈등의 한 축일 뿐이에요. 드라마에선 영란의 언니와 동생을 통해서 부부애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보실 수 있어요. 부부 관계에 대해서 곰곰이 고민해볼 수 있는 드라마죠.”

◆"무심한 남편? 상상도 안 가죠”=그는 40분이 넘도록 해맑게 떠들었다. 질문 하나에 답이 대여섯개씩 매달리는 식이었다. 하긴 2년 만에 드라마 무대에 돌아오니 신이 날만도 했다. “2년이나 훌쩍 흘렀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뮤지컬 ‘굿바이 걸’에 출연했고 영어 공부도 하면서 보냈어요. 드라마는 쉬었지만 늘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죠.”

하희라씨는 ‘밥줘’에서 네 살 연하인 배우 김성민씨와 애정이 식어버린 채 굴레처럼 살아가는 부부로 호흡을 맞추는 중이다. [MBC 제공]

그의 연기 몰입도에 대해선 군소리를 달기 힘들다. 이날도 무려 17장에 달하는 대사를 단번에 소화해 박수를 받았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편이예요. 암 환자로 출연할 때는 실제로 아파서 병원을 다닐 정도죠. 이번에도 무심한 남편을 둔 영란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애쓰고 있어요.”

하긴 보통 애써서 될 일이 아닐 게다. 배우 최수종씨와는 소문난 ‘닭살 부부’ 아니던가. 결혼 16년차인 그는 “살면서 남편에게 ‘밥줘’란 무심한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드라마가 처음 방송되던 날 “너무 재밌더라”며 호들갑을 떨어주던 남편이다. “‘밥줘’란 말을 듣는 대신 제가 수종씨에게 ‘밥 먹어’란 말을 많이 하죠. 끝까지 서로를 믿어주는 게 우리 부부가 사랑을 지켜온 방식이에요.”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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