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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 (20) 박상우 → 김주영 『똥친 막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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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제목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21세기, 디지털 문명이 만개한 시대에 이렇게 토속적인 제목을 붙여 어떻게 독자들과 소통을 할 셈인가. 나는 요즘 독자들이 ‘똥친 막대기’가 무엇인지 대부분 모를 것이라 단정했다. 비데가 판을 치는 시대에 ‘퍼세식(재래식)’ 변소시대의 똥친 막대기라니!

하지만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목이 ‘똥친 막대기’인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느껴진 때문이었다. 『똥친 막대기』(비채, 2008)를 읽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책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는데 두 작품이 나름 견성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연금술사』가 도식화된 서구적 패턴에 의거한 이야기라 큰 감동을 느낄 수 없었던 데 반해 『똥친 막대기』는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우리네 토속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어 읽는 내내 가슴 밑자리에서 징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설은 감동을 지닌 이야기이다. 젊은 날은 나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소설을 20년쯤 쓰고 나니 ‘전후좌우지간’ 감동을 지니지 않은 이야기는 곤란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한껏 간결해졌다. 그것이 한국소설이 살 길이고 또한 갈 길이라는 결론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똥친 막대기』는 작가적 포즈도 없고 서구적 흉내도 없고 오직 우리네 토속정서를 질료로 삼아 참으로 튼실하게 감동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낸다.

『똥친 막대기』는 의인소설이다. 어린 나뭇가지의 여정을 통해 작가는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고, 고난을 통해 견성에 이르는 생명의 튼실함을 우주적 순환구조 속에서 완결한다. 그 모든 것을 넉넉하게 감싸 안고도 작가의 자취는 그림자로도 드리우지 않는 장인정신이 참으로 부럽다. 국적불명의 소설과 지나친 작가적 포즈를 앞세우고 쓴 소설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이렇게 봇도랑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면서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설이 있다는 게 너무 다행스럽다.

하지만 앞으로 누가 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그 계보에 맥이 끊길까 적잖이 걱정된다. 『똥친 막대기』는 우리 것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이야기의 감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오래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순도 100% 우리 작품이다.

◆박상우(사진)=1958년 경기도 광주 출생. 8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이상문학상 수상. 단편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독산동 천사의 시』『사랑보다 낯선』『화성』『짬뽕』, 장편 『호텔 캘리포니아』『가시면류관의 초상』『지붕』 등이 있다.

◆『똥친 막대기』=『객주』의 작가 김주영의 첫 그림소설. 백양나무 곁가지로 태어난 ‘나’가 농부의 손에 꺾이면서 어미나무를 떠나 회초리로, 똥친 막대기로 쓰이며 파란만장한 모험에 휩쓸리는 여정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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