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위기 맞닥뜨려 칼을 안 빼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워낙 폭발력이 강한 이슈들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실 지난주엔 경기 움직임과 관련해 국내외에서 의미 있는 통계와 전망들이 잇따라 발표됐다. 우선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선 미미하기는 하지만 4월 내구재 수주, 일반 주택 판매의 증가와 5월 중순 이후 신규 실업자의 감소 등 추세 반전의 기미가 엿보이기 시작했고, 이런 변화 움직임 속에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미국 경제가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물러났고 차분해졌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소비심리지수(CSI)가 105를 기록해 1년 만에 기준치 100을 넘어섰고, 통계청의 ‘4월 산업활동 동향’에서는 광공업 생산이 올 들어 4개월 연속 전월비 증가세를 보이면서 전년 동월비 하락폭도 한 자릿수(-8.2%)로 줄어들었다. 물론 설비투자가 여전히 전년 동월비 20%를 웃도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한은이 발표한 제조업 5월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여전히 70대의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등 본격적 경기 회복을 말하기엔 일러도 한참 이른 상황이다.

동유럽의 위기 상황도 아직 진정되지 않았고, 영국의 재정 악화와 그에 따른 ‘부정적’ 신용평가, 파산보호신청이 불가피한 GM 문제와 프라임 모기지(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노출 등 잠재 변수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올 2분기 들어 세계 경제에 미약하게나마 ‘경기 회복 신호’가 켜지고 있는 점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내외 상황을 어떻게 관리하면서 앞으로의 본격적 경기 회복에 대비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무엇보다 서둘러야 하는 것은 구조조정이다.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제도적 독점에 안주하거나 일시적 경기 팽창에 편승하지 않고선 유지되기 힘든 비효율은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털어내는 게 옳고, 위기 상황은 기회 측면에서도 필요성의 측면에서도 호기(好機)다.

기업 구조조정 못잖게 장기적으로 더욱 중요한 게 경제를 둘러싼 제도, 나아가 구조 자체의 개혁과 조정이다. 이번 경제위기가 외수에 기반한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노출시켰다면 그 대안으로 내수, 그 핵심으로서 서비스산업의 구조조정에 매진해야 할 절박성을 느껴야 한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의 복지예산 투입과 관련해 그 시스템의 허술함에 놀랐다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항구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모든 게 구조조정이고, 미래 상황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이다.

박태욱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