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IMF시대의 미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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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는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사물을 새롭게 보도록 요청하고 있다.그래서 과거를 바꾸기, 구조조정이라는 용어가 일상생활을 지배하게 됐지만, 문제는 무엇을 목표로, 누가, 어떻게, 어떤 거점을 구축해서 상호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IMF시대를 이용해 오히려 과거에 힘을 얻지 못하던 과격한 사상을 실현하려는 경우마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그러나 다급한 상황일수록 우리사회가 잘못된 믿음에 빠져서는 개혁은 실패하고 미래가 어두워진다.

우리사회에 팽배한 미신의 대표적 예로 외환위기의 주된 책임이 '외화를 많이 사용한 기업' 에 있다는 믿음을 들 수 있다.그러나 1백억달러 빌려다 그 이상 수출한 기업이 외화부족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외채를 한 푼도 빌리지 않고 쓰지도 않았지만 수입을 잔뜩 유발한 과소비 행태자.내수산업 공급자.부실공공사업 추진자.경기부양정책 수립자들의 책임인지는 쉽게 구별될 것이다.

두번째 미신 :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의 부실한 재무구조가 외환위기의 근본원인이니까 부채비율을 선진외국 기준으로 낮추고, 자기자본의 5배가 넘는 차입은 세법상 처벌받아 마땅하다' .상장기업의 경우 80년대 후반의 부채구조가 지금과 비슷했건만 지금처럼 부도도 많이 안 났고 외환위기는 더구나 없었다.왜 그런가.

당시보다 투자수익률이 낮은 데서 설명을 구해야 할 것이다.기업경영환경에 따라 차입금 상환능력이 변하고, 그에 따라 부실채권규모가 달라지는 원리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왜 지금의 경영환경은 과거보다 낮은 투자수익률을 가져오는가.치열해진 국제환경도 있지만 정책환경.사회환경이 나빠져서 그런 것은 아닌가. 따라서 기업 재무구조조정만 얘기할 게 아니고, 행정개혁.정치개혁.금융개혁이 더 먼저, 또는 같은 속도로 진행돼야 하는 게 아닐까.

세번째 미신 : '기업 구조조정은 빠를수록 좋다' .그렇다.더 이상 늦출 수 없다.그러나 구조조정과정에서 방출되는 자산.시설.인력을 소화할 체제구축은 더 빨라야 불필요하게 많은 생산기반을 허물지 않고 지낼 수 있다.사회전체로 볼 때 거품을 제거하는 게 불가피한 과정이라면 직접적 생산자원보다는 가용되지 않거나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자원이 정리되는 게 IMF관리체제가 경과한 후 재도약하는 기반의 보존측면이나 공평성 측면에서 타당하다.

금년중 산업기반이 30%쯤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전제라면 왜 공공부문은 그 이상 줄이지 않는가.빠를수록 좋을텐데. 재벌회사들은 빨리 해외에 매각하라면서 왜 공기업 매각은 서두르지 않는가.실업구제자금 조달에도 보탬이 될 텐데.

네번째 미신 : '구조조정은 정부가 주도세력이 돼야 한다' .특히 IMF시대에 대외신뢰도 향상의 책임은 정부에 있기 때문에 일정부분은 인정한다.그런데 결합재무제표 작성이나 상호지급보증 축소 등 구체적 방법론에 들어가면 다시 한번 생각할 게 있다.

그 최종목적이 무엇인가.원활한 외국자본 유치가 목적이라면 외국자본 유치를 통해 구조조정하겠다는 특정 대기업군 이외에는 왜 요구하는가.금융기관의 부실자산 발생예방이 목적이라면 30대 재벌이든 아니든 상관말고 요구해야 하며, 그나마 해당 금융기관들이 자기들 목적에 맞는 격식을 요구토록 해야지 왜 정부기관이 획일적으로 요구하는가.

다섯번째 미신 : '정리만 하면 저절로 새 살은 돋아난다' .즉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다' .그렇다.단 섭생이 잘되는 상태에서 받침대가 예쁘게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미래의 산업구조를 어떻게 만들 계획인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주력업종을, 그것도 현재 영위하는 업종중에서 선택하라고 주문받는 측은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또 제반 환경이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곧 죽을 수밖에 없는 민간부문은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일 탈출경로를 만드는 게 급한 반면, 변하지 않아도 별로 표시 안나는 공공부문 등의 기존틀 파괴에는 더 큰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 정부에서 강요하고, 학자들이 꿈꾸는, 선진형 기업경영의 바람직한 모습을 정부조직.관변단체.공기업에서부터 보여주면 어떨까.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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