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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시대 사람들]"이젠 실업급여도 끊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쿵" - .도장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게 마지막이네요. " 여직원의 말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4일 오전9시10분 서울 도봉구 창동 북부지방노동사무소 고용보험과. 崔윤석 (가명.48.서울강북구미아9동) 씨의 실업인정서에 여섯번째 도장이 찍혔다.

3개월분 실업급여중 최종 보름치 43만2천원 지급 확인용이다.

"막다른 골목에 온 느낌입니다."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직원 20명을 거느렸던 K한방병원 행정부장. 어느날 갑자기 병원이 경영난으로 쓰러져 퇴직금 한푼 못받고 실직자 신세가 됐다.

벌써 8개월째. 초기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3사관학교 출신으로 80년 대위 전역. H건설 관리과 등에 다니며 야간대학을 마쳤고 한방병원에서 7년. 그러나 새 직장 잡기가 여의치 않았다.

보험.적금을 헐어 생활비로 썼다.

그러기를 다섯달,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가 닥쳤고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처음엔 관리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2개월 정도 지나니 아무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지만 1주일만에 그만뒀다.

낯선 이에게 말 붙이는 것처럼 고역은 없었다.

정수기 판매도 열흘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막노동은 늙었다고, 경비일은 많이 배웠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더군요. " 그동안 소득없이 알아본 일자리만도 3백곳 정도. 지난달부터는 아내가 식당일을 나가고 있다.

경남 남해에서 소작인의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崔씨. 그가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한 것은 귀농 (歸農) .충남보령군 처가의 야산을 개간해 유실수.약초를 재배하면 식구들이 먹고 살 수는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의사가 되고 싶다는 고2 우등생 큰 딸과 가수가 꿈인 중3짜리 작은 딸의 장래가 마음에 걸려 속앓이를 해왔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나 봅니다.

시골로 내려가면 그 애들이…. " 마지막 실업급여 신청을 하고 노동사무소를 나서는 崔씨의 어깨가 더욱 처져 보였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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