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 음식, 코스요리 발전시켜 세계화 성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맛있는 파스타를 먹으려면 이탈리아가 아닌 도쿄로 가야 한다는 게 이젠 정설입니다. 종주국인 이탈리아의 요리사들이 일본으로 가서 한 수 배우고 있으니까요. 서양에서 왔으나 이젠 일본의 명물이 돼버린 나가사키 카스텔라는 또 어떻고요. 세계 곳곳의 음식 문화를 흡수해 자기 방식대로 새롭게 빚어낸 일본에서 배울 건 배워야죠.”

JW메리어트 호텔의 일식당 ‘미카도’의 조리장 장성태(38·사진)씨의 말이다. 10대에 처음 맛본 회덮밥의 맛에 반해 일식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 그가 얼마 전 일을 냈다. 한국인, 아니 비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전국일본요리콩쿠르’에 출전해 상을 탔다. 대회는 두 달여 전인 3월 18일 일본 도쿄에서 사단법인 일본요리연구회 주최로 열렸다. 일본 농림수산성·후생노동성·경제산업성 등의 정부기관 및 도쿄도 정부가 후원한 권위 있는 대회다. 올해가 23회째다.

올해에는 200여 팀이 솜씨를 겨뤘다. 장씨는 ‘봄의 축제’라는 테마로 ‘현대일본요리’ 부문에 일곱 가지 코스요리를 출품해 ‘일본식생활문화재단 이사장 상’을 수상했다. 장관상에 해당하는 ‘농림수산부 대신(大臣)상’을 비롯한 더 높은 급의 상도 있었지만 그는 “수상한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평소 스승으로 모셔온 일본인 셰프의 추천으로 나가게 됐을 때, 처음엔 경험만 쌓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수상자로 저를 호명하는데, 감격스럽다 못해 기분이 멍해지더라고요.”

그가 느낀 것은 개인적 영광뿐이 아니었다. 시상식에서 대회 주최자의 말을 듣고는 소름이 쫙 돋았다. “수상자들을 세워놓고 대회 주최자가 하는 말이, ‘일본요리가 세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저 멀리 라오스와 같은 나라에선 여전히 제대로 된 일본의 맛을 느끼기 힘드니 여러분이 더 노력해주길 바란다’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 머릿속엔 “우리 한식은 어쩌나”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했다. “지금 정도의 성공이면 충분히 일식은 세계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 당최 노력을 멈출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오히려 바짝 더 긴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그의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한식을 일식처럼 세계적인 요리로 자리 잡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일단 ‘손맛’에 대한 고집부터 버려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맛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요. 두루뭉술하게 ‘손맛’이면 된다는 식이면 외국인들이 그걸 어떻게 요리하겠어요. 한식을 제대로 세계 무대에 데뷔시키려면 기본 자료를 정리하고 조리법의 기준을 세우는 노력이 우선입니다.”

한식이 세계화하려면 무엇보다 코스요리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일본요리는 상당 부분 프랑스 코스요리를 들여와 일본화했어요. 지금도 일본의 유명 요리사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요리사와 교류와 협력을 끊임없이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식도 이렇게 발전해야지요. 사실 지금 일본요리의 중요한 뿌리라 할 수 있는 쇼진요리(精進料理)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을 통해 전해진 불교 음식이죠. 그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그는 고교 졸업 뒤 바로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칼을 잡은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새벽 5시에 나와 밤 10시까지 일하기를 몇 년 계속한 뒤에야 겨우 초밥을 쥘 수 있게 됐다.

“그냥 일이 재미있었어요. 선배들 출근 시간보다 두 시간 더 일찍 나와 생선을 다듬는 것은 기본이죠. 제가 승부욕이 강하거든요. 지고는 못 살아요. 그래서 더 이 악물고 해냈지요.”

일단 일본요리에선 일가는 이뤘다는 게 자타의 평이다. 그가 일하는 날인지를 전화로 확인하고 찾는 손님이 많다는 게 식당 관계자의 귀띔이다.

“앞으로 일식에서도 배움은 계속해야지요. 하지만, 한식과 일식의 만남과 조화를 통해 한식 세계화에도 일조하고 싶습니다.”

 글·사진=전수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