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KBS2 '사건25시' 범행 재연 너무 선정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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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10시를 조금 넘긴 25일 밤. 늘씬한 미녀가 샤워를 하는 모습이 KBS - 2TV 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상반신 장면. 떨어지는 물에 몸을 맡긴 여인의 자태가 훑어내리는 카메라를 통해 안방으로 찾아왔다.

다음엔 하반신. 역시 조금 더 올리면 난리가 날 지점에 도달한 렌즈에 뽀얀 맨살이 비쳤다.

여인은 범인을 공개수배하는 '교양' 프로 '사건 25시' (매주 수 밤10시)에 출연한 것이다.

지금 막 성폭행을 당한 뒤 몸을 씻는 장면을 대역으로 보여주는 중이었다.

지난달 '2TV의 공영성 강화' 를 외치며 단행한 KBS 개혁의 일환으로 신설된 이 프로에 대한 홍보자료를 잠깐 옮긴다.

'재연은 함축적이면서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사건정황의 증거를 쫓아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추리에 주안점을 둔다. ' 그러나 TV 속의 상황은 정반대. 재연은 아주 감각적이고 실오라기를 풀어가듯 친절했다.

피해자를 쓰러뜨린 범인의 시선이 하체로 향하는 것을 클로우즈업, 다리를 훑는 카메라, 속옷이 보이기 직전까지 올라간 치마. 범죄 예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말초적 자극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반면 추적과정은 "수사상 이유로 밝히기 곤란하다" 며 극히 함축적으로 처리했다.

제작진의 말 - "요즘 워낙 이런 범죄가 많아지고 있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상세하게 보여줘야 같은 피해를 입지 않을 테니까요. " 그렇다면 실감나는 재연을 곁들이며 가르쳐준 내용들을 보자. ▶성폭행 피해자는 신고를 잘 안해 자꾸 재발한다▶범인은 사전에 치밀한 사전답사를 한다▶현장의 유류품들은 물증이 된다▶출근시간 후 1시간에 가장 방심한다▶가스관을 타면 5~6층도 올라갈 수 있다▶검침원을 사칭해 직접 점검해본 결과 1백 가구 중 37가구가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다.

물론 예방에 도움되는 내용이지만, 뒤집어 보면 범죄 요령을 알려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사건 재연 프로의 위험성을 거듭 지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KBS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다.

벌써 5회가 방영됐지만 당초 밝힌 '선정.퇴폐적 내용 배재' 'IMF시대를 틈탄 신종 경제범죄를 다뤄 TV의 공익적 측면을 최대한 증대' 방침에 대한 진지한 노력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6회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기대한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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