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핵, 단호하고 단합된 대응만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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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우리 사회에서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북한이 강행한 2차 핵실험은 한국에 몇 가지를 절감하게 만들었다. 우선 지난 수년간의 비핵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핵 보유국이 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한결같이 유지되어 왔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가 필요한 대량살상무기 성능 시험이 2006년에 이어 또다시 반복되었다는 것은 핵과 탄도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집요한 열망을 방증한다. 그동안 북한의 핵개발은 서류상으로만 ‘동결’되었던 것이다.

혹자는 한·미의 대북 협상 의지 부족이 북한으로 하여금 2차 핵실험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또 한번의 강경수단을 통해 미국과의 직접 거래 여지를 확대하려는 계산을 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대화’는 일반적인 어법의 그런 대화가 아니란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대화’는 북·미 간의 ‘핵 군축회담’이며, 미국과 북한이 대등한 입장에서, 아니 어떤 면에서는 북한이 철저한 갑(甲)의 입장에서 행하는 그런 협상이다. 의제 역시 북·미 수교나 경제지원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공약 철회와 같이 한반도의 전략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쟁점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 핵실험은 남북한 관계에서 북한이 최소한의 상식마저도 쉽게 외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충격과 애도 분위기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의제를 한국이 그대로 수용할 결심이 서지 않는다면, 당분간 대화나 교류·협력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통첩을 전달한 것이다.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제1차적인 잠재 피해자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 문제는 남북한 간의 의제가 아니고 북한과 국제사회,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미 간의 거래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 사회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실존하는 위협보다는 장기간 해결되지 않은 일상적인 문제 정도로 인식하는 동안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핵보유를 위한 행보를 가속화해 온 것이다.

이제 한국은 입장과 원칙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을 상기하면서 항상 전전긍긍하는 불안한 상태를 지속해선 안 된다.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소모적인 분열이나 논쟁은 이제 접고 차분하면서 단호한 분노를 전달해야 할 시기가 됐다. 물론 평화공존과 통일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남북한 간의 협력이나 인도적 대북 지원은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가장 위험한 무기들을 가장 충동적이고 독선적인 정권이 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고, 또 앞으로 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정부와 국민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의 지원과 투자에 상응하는 형평성 있는 조치 역시 북한에 당당히 요구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실질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통합적인 지혜가 발휘돼야 할 것이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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