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공작]철저수사 외치는 여권…조기진화땐 악재될까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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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권이 북풍수사의 조기매듭 방침을 포기,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상을 철저히 밝힌다" 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여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타개키 위한 고육책이라 할 수 있다.

경제난 극복에 국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북풍수사를 가급적 빨리 종결하려 했지만 '이대성 파일' 돌출로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는 판단이다.

요컨대 경제난 극복의지는 희석되고 오히려 "여권이 구린 데가 많아 사건을 빨리 덮으려 한다" 는 야당측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여권의 고위 당국자는 "조기매듭 원칙을 고수한다면 북풍건은 두고 두고 부담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수적 우세의 야당에 발목이 잡히는 곤혹스런 처지로 몰린다" 는 우려를 표명했다.

정면돌파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자민련측마저 당국의 북풍수사 대처방식에 강한 불만을 전달해온 것도 조기매듭 방침을 바꾸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최근 여론조사에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지 조기 매듭이 능사가 아니다" 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난 것도 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여권이 재미교포 윤홍준 (尹泓俊) 기자회견 주선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진 권영해 (權寧海) 전안기부장과 오익제 (吳益濟)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박일룡 (朴一龍) 전1차장 등의 사법처리를 다음주초에 집행키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여권은 수사의 초점을 윤홍준 기자회견, 한나라당 정재문 (鄭在文) 의원의 북한커넥션을 중심으로 전개할 생각이다.

金대통령이 취임 한달 간담회에서 북풍공작의 본질을 야당후보 낙선공작으로 규정한 만큼 수사의 초점도 여기에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상이 모두 밝혀져 관련자들이 드러났을 경우 과연 어디까지 사법처리할 것이며 사법처리의 기준은 무엇이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의 고민도 바로 이 대목이다.

여권 핵심부는 만일 야당의 고위층을 포함한 관련 정치인들을 대거 사법처리할 경우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 사법처리 최소화 방침이 자주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사법처리하지 않는다면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게 뻔하다.

그래서 여권은 '무책임하게 비치기는 하지만' 국민여론을 잣대로 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검찰과 안기부 수사결과가 발표되면 "누구 누구는 처리해야 한다" 는 답이 나올 것이란 기대다.

金대통령이 "내용을 국민에게 밝힌 뒤 국민여론을 참작해 결론을 내리겠다" 고 한 말을 잘 음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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